day-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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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혁신으로 세상을 바꾸는 열매. 우리 회사는 좋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돈을 벌기를 바란다. 사회가 기대하는 기업으로써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한다. 텔레그램과 달리 영장이 있으면 수사에 협조한다. 회사가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고 담배나 게임사업처럼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면을 가진 사업을 하지 않는 점이 일하면서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다. 어떤 회사는 불법을 숨기기 위해서 사무실 바닥을 뜯어 노트북을 숨기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나한테 노트북을 숨기고 오라고 한다면? 그런 상상을 하면 우리 회사가 좋은 철학을 가진 회사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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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관심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런 이들을 한 곳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동료들과 같이 한 스터디들도 정말 많다. sql, 자바스크립트, 파이썬, 통계, 프로그래밍 기초, 심지어 영어까지 모두 동료들이 나에게 가르쳐 줬다. 누군가 가르쳐 준다고 문을 열면 거기 살포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스스로 뭔가를 가르쳐 주는 동료들은 에너지가 넘쳤고, 목표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것도, 또 그들이 알려주는 지식을 듣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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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서 더 좋은 것도 있다. 사람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파워 오지라퍼로써, 적성에 잘 맞는다. 우리 팀의 메인 업무들은 대체로 내가 만들어낸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일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게 되고 자동으로 몰입이 된다. 진정성이 없으면 형편없는 퍼포먼스를 내는 탓에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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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점은 회사가 작았을 때 재미를 알아버린 것. 지금보다 회사가 훨씬 작았을 때 너무 재미있게 다녀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재미가 좀 덜해졌다. 그래서 자꾸 작은 회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의 철학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백 명 회사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과 삼천 명 회사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은 좀 달라졌다. 그걸 볼 때마다 예전이랑 비교가 되어서 아쉽다. 이런 사람을 레거시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내가 레거시가 된 것 같아서, 다시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