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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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진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싸이월드가 서서히 잠기고 있을 때도 그냥 사진도 이렇게 안녕이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다. 사진 백업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다. 결혼사진도 뭐, 인화되어서 그 시절 액자에 넣은 사진 몇 개만 방에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중에 제일 소중한 사장은 한 장쯤 있지 않을까?
2
우리 집에는 없고 친정집에 있는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어릴 때 이모네 집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너무 어릴 때라 왜 그런 이벤트가 생긴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모가 사진사님을 집까지 불러서 사진을 찍었다. 거실은 순식간에 스튜디오가 되고 방은 대기실처럼 되었다. 대기실에서는 사람들이 화장을 하고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우리도 최대한 곱게 머리를 빗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할머니는 한복을 차려입으셨다. 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걸 보면 이미 그때 병환이 생긴 이후일 지도 모르겠다. 이모네 가족과 우리 가족까지 모두 외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3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관련된 추억이 거의 없다. 할머니의 상은 시골집에서 치러졌는데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나에게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다.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봤는데 너무 어려서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그렇게 어렸을 때인데도 할머니와 생전에 추억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그 사진 찍는 요란한 이벤트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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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모아 예쁘게 사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행사가 될 수 있다. 졸업식이나 결혼식, 특별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여 사진 찍기 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되는 것 같다. 다음번에 나도 함께 모여서 사진 찍고 싶은 그룹을 생각해보고 그들과 사진을 남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친정에 있어서 지금 직접 볼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쉽다. 나중에는 친정집 사진들도 내 메모리에 저장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