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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 연말들을 돌이켜 본다. 연말에 무얼 했더라? 텔레비전으로 시상식을 보곤 했었다. 의외로 대상 타는 사람들보다 신인상이나 조연상을 타는 사람들 수상소감이 더 재밌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함께 울면서 귤을 까먹었던 것 같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맞이한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를 축하하면서. 나도 언젠가 뭔가를 쌓아 올린다면 저렇게 상 받을 날도 있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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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박나래 씨의 대상 탄 다음날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화장도 못 지우고 잠든 박나래 씨는 다음날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깨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로 축하 문자와 전화를 받고 어젯밤 없어진 필름을 조각모음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영광은 순간이고,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순간 뒤에는 평범한 시간이 온다. 매 순간이 특별할 수는 없다. 매 순간이 가슴 벅차면 심장에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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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도 그렇다. 일 년간 고생한 나를 칭찬하고 토닥이는 찰나, 새해가 와버린다. 새해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조인다. 새해의 다짐을 만들고, 다시 희망차져야 한다. 그러고 나면 벌써 1월이 다 갔어? 벌써 일 년의 절반이 갔어? 벌써 올 해가 다 갔어? 이런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의 머리에 올라타지 못하고 꼬리를 붙들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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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을 혼자 보낸 적이 있었다. 이십대의 마지막 날인데 그냥 집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낮에 약속 없는 사람들을 찾아 헤맸지만 실패했다. 그래도 가만히 집에 가기 싫어서 퇴근길에 한남동에 갔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찬 카페에 가서 차와 케이크를 시켰다. 거기서 이십 대를 정리하고 삼십 대를 맞이하는 글을 적었다. 그 시간만큼은 벌써 이십 대가 끝났어? 벌써 서른이 되었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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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 대가 어땠었는지를 기록하고, 삼십 대에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적었다. 그때 마신 차 향기가 좋아서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적었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올 연말에도 한 해를 스스로 회고하고 2021년의 내가 어땠으면 좋겠는지를 적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쓰는 동안은 시간이 나를 끌고 가지 않고 내가 나를 끌고 갈 수 있다. 또 운이 좋다면 내가 바라는 내년의 모습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는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