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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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양한 백일 프로젝트를 해봤다. 글쓰기, 코딩하기, 미니멀 라이프 만들기 등등. 모든 백일 프로젝트는 진한 흔적을 남겼다.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공개된 곳에 썼다. 글을 좀 더 완성된 형태로 적어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어떤 날은 잘 써진 듯해서 뿌듯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보잘것없는 글을 올려도 되나 싶기도 했다. 매일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자그마한 용기가 필요했다. 덕분에 쓰는 프로젝트는 내 브런치에 기록되었고, 지금은 삼백 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책 쓰려고 생각만 하고 왜 못쓸까 자책했지만, 나는 이미 작가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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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백일 프로젝트는 재미없는 코딩 공부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개발을 배운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개발자가 무척이나 환영해주었다. 개발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고, 아주 사소한 발전에도 이제 개발자를 해도 되겠다며 호들갑을 떨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개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흔히 쓰는 개발 용어로 테스트 드리븐 개발 TDD, 도메인 드리븐 개발 DDD 이런 약자들을 쓰곤 하는데, 나는 PDD나 IDD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람(People)이 개발을 드리븐 해주거나, 인스타그램(Instagram) 댓글 파워로 개발했다. 우쭈쭈는 많은 것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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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백일 프로젝트를 만들어준 로리는 나에게 은인 같은 존재다. 그간의 백일 프로젝트가 나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준 것처럼 이번 질문에 답하기 프로젝트도 물에 빠진 나를 꺼내 주지 않을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신청했다. 그때도 마음이 어려웠던지 몇 시간의 망설임 끝에 겨우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다시 글을 매일 쓸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격리 생활은 이상하게 사람 마음의 문까지 닫게 만든다. 집안에서 의기소침해진 나를 겨우 어떤 백일 모임 한 구석에 갖다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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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 중의 핵인싸 로리의 지인들이어서 그랬는지 톡방은 이상하게 활기가 넘쳤다. 붙임성으로 어디 가서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이번 모임에서는 꼴등 축에 든다. 싹싹하게 대화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화방의 온기를 조용히 쬐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온라인으로 선물을 이렇게 많이 주고받는 방은 처음 봤다. 모르는 이에게도 이렇게 진정성을 전달할 수가 있구나, 세상에 진심을 전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려운 걸 척척해내시는 분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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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도 좁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을 매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아마도 또 살다 보면 어디선가 만나게 될 것 같다. '어머 그때 백일 질문에 답하기 같이 하셨던 00님이시군요!'하면서 반갑게 손잡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그러고 보니 아는 사람 50명을 이 격리 시국에도 착실하게 연결해 내신 록담 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언젠가 나의 지인들을 연결하고 싶을 때 한 번쯤 써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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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 자신과 열심히 수다 떨 수 있었다. 단 한 줄의 질문에도 여러 문단의 답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나의 수다력을 확인했다. 반칠십 살면서 이미 아는 바이긴 했지만... 역시 나 자신 정말 말 많다... 글을 자주 쓰지 않으면 마음이 갑갑하고 편치 않은데, 쌓인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랬나 보다. 다시 착실하게 나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자고 다짐하면서, 백일 소감을 마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