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 리뷰
집에만 있으니 주말에는 여유가 많아서, 비효율적인 일을 찾아 나서게 된다. 오늘의 비효율적인 과업은 스콘을 구워보는 일이었다. 몇 천 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스콘을 굳이 직접 구워보려고 버터, 크림치즈, 베이킹파우더, 박력분 밀가루를 샀다. 레시피대로 만들어 구웠더니 향긋한 크림치즈 스콘이 완성되었다. 스콘은 반죽 숙성이 필요하지 않고 굽는 시간도 15분 정도여서 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한 번 해보니 또 구워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주변에 나눠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사 먹으면 될 일을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했지만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다.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제 나는 스콘을 구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1968년 이탈리아 청년이었던 조르지오 로사도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프랑스의 5월 혁명, 프라하의 봄 운동이 일어났던 그 무렵 이탈리아 해안에 세워진 뜬금없는 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뜬금없이 시작된다. 한 엔지니어가 이탈리아 영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9개의 기둥을 박아 인공섬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든 거냐는 질문에 '그냥, 만들 수 있어서 만들었어'라고 그는 대답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분명히 영화 시작부터 알려줬는데, 바다에 나만의 나라를 세운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 때문에 이 내용이 실화라는 걸 잊어버렸다. 중간에 국가 간 분쟁을 조정하는 기구가 등장할 때쯤에는 이 상상의 시나리오 검증하는데 국제법 자문을 한참 받았겠는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은 진짜였다. 검색해보니 로사가 이 구조물을 만들었을 때 이탈리아 당국에 영업허가를 받으려고 했으나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그는 나라를 선포하고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이탈리아가 영업하려는 국민에게 허가만 착실히 잘 내주었더라면, 이런 나라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밌는 점은 이 섬이 생겼을 때 당시 많은 관광객이 밀려들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를 쓰는 작은 섬나라. 나라라곤 하지만 400제곱미터라 구경할 것도 없는 이곳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몰려왔을까? 게다가 영화에서 보면 이 나라의 시민권을 받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탈리아에서 수백 명이 신청했으며 프랑스, 독일, 미국 사람 중에서도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의 시민권을 받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넓은 영토와 공고한 사회 시스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를 두고, 사람들은 얇은 기둥 위에 세워진 인공섬 나라의 시민이 되고자 했다. 지도에 점으로도 찍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인공섬이 주는 강렬한 자유의 향기가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로즈섬은 67년 완성되어 68년 6월 독립국가로 선언되었고 이듬해 2월에 폭파되었다. 독립국가로 존재한 기간이 이토록 짧았는데도 많은 이들이 이 나라의 시민권을 신청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코로나 19의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이 불만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지금도 이런 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즈 공화국의 시민권을 주저 없이 신청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에게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은 와 닿는다. 거주할 수 있는 땅도 없고 나를 보호해줄 힘도 없지만, 나를 구속하지 않는 나라.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자유가 아녔을까. 그저 콘크리트 구조물이었지만 그 땅에서 술을 마시면 느껴지는 자유의 맛이 무척 달콤했을지도 모른다.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 사건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의 영해가 더 넓어졌다고 한다. 혹시나 또 누군가 자기만의 나라를 설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로, 국가의 3요소만 갖추면 새로운 나라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인간은 포기를 모르는 동물이기 때문에 조르지오 로사는 사망했지만 제2, 제3의 로사가 또 나오겠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라의 출현을 기대해 보면서 오늘의 감상문은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