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바다에 풍덩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by Lucie

뭔가에 깊숙히 매료되는 사람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사람이 한 가지에 깊숙하게 빠질 때, 동시에 많은 게 결여되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공연에 빠진 친구는 수업을 빠지고 공연을 보는데 모든 돈을 다 쏟아부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불안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스무살에 공연에 매료되어 시험도 안 보러가는 상념에 빠진 삶, 그 자체가 주는 멋이 있다. 나는 그런 불안정한 형태의 아름다움에 끌렸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삶이 그렇다. 특별히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감독은 견디기 어려운 압박에 시달린다. 그때 바다에 돌아와 우연히 문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문어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점 역시 좀 특별한데가 있다. 내가 스노쿨링을 하다가 문어를 발견했다면? 와 문어다, 신기해! 거기가 끝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문어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문어를 보기 위해서 몇 백일을 매일 같이 물속에 들어갔다. 문어에 대해 공부하고 지독하게 관찰한다. 문어의 흔적을 하나하나 짚어 집을 옮겨버린 문어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처음 만났을 때 문어는 온갖 조개껍데기를 빨판으로 들어 제몸을 감싸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혼자 뭘하고 요란하게 노는 것인가 싶어 빵 터졌다. 나중에서야, 문어가 생존을 위해서 배운 기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문어는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같은 존재다. 아주 물렁한 몸으로 이빨 달린 천적을 피해 몇 년을 살아내기 위해서 문어는 혼자서 많은 것을 습득해야 한다. 문어는 혼자 자라난다. 문어가 바다에서 지내는 매일이 생생하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잡힌다. 해산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 문어에게 감정 이입하고 말 것이다. 그만큼 감독이 문어를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가득하다.


스크린샷 2020-12-26 오후 9.08.19.png 문어와 데이트하는 로맨스물 같은 느낌!


누군가가 어떤 것에 깊이 매료되는 경험을 바라보는 것은 쾌감이 있다.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노천탕에 앉아 있는 듯한, 아주 더운 날 아이스크림을 왕 베어문 듯한 그런 느낌이다. 요즘 시간이 많아지면서 매일보는 창밖 풍경도 심드렁, 웹툰도 드라마도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그런 중에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시선을 영상으로 함께하는 일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감독은 문어의 일상을 넘어 문어의 일생을 지켜본다. 정말 '지켜'본다. 문어의 안전을 위해서 낮이고 밤이고 고민하던 그가, 결국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택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깨닫는다.


지구에서 인간이 해야하는 역할, 사회와 가정에서 한 인간으로써 해야하는 역할은 상당히 많다. 문어가 바다에서 놀라운 생존기술을 터득해 냈듯이 우리도 해내야할 미션일 것이다. 인간도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유기체로서 내가 딛은 땅에서 무슨 일을 해야하는가. 그점을 문어의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파란 바다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추가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문어를 먹겠다는 생각이 사라질 수 있다. 문어가 먹을 것으로 보이기 전에 친구로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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