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영화 <소울>을 보고

by Lucie

올해 들어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친구 부부와 매달 만나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이름은 '팬데믹 레거시'.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상황에서 모두가 협동해서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게임이다. 캐릭터마다 능력치가 달라서 넷이 아주 긴밀하게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보통은 서너 차례 앞까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간발의 차이로 패배하는 경우가 있어서 모두 머리를 쥐어 뜯게 된다. 지난주에는 게임을 하다가, 아니 이게 뭐라고 우리가 주말에 이렇게 머리에 쥐가 나도록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현타도 왔었다. 우리는 왜, 왜 이토록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을 하는가!


가장 좋은 답을 찾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 근심 많은 나를 한 걸음 떨어져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가장 좋은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이토록 아등바등하는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이제 해볼만큼 해봤다 싶으면 회사를 그만두어도 되고, 다른 제안을 수락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나에게 어떤 손해가 있는지, 다른 선택을 하면 나는 무엇을 또 잃고 얻는지 의미 없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그냥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 계산기는 핑계뿐일 수도 있다. 실은 지금껏 그렇게 치밀한 계산으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여기서부터 영화 내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제 집에서 영화 <소울>을 봤다. 영혼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성격을 부여받는다. 부여를 받고나도 거기에는 한 칸이 비어있다. 빈칸은 무언가로 채워지고, 채워지는 순간 지구로 갈 수 있는 출입증으로 변한다. 그 한 칸이 내내 채워지지 않았던 한 영혼이 우연한 사고로 지구에 온다. 결국 그 빈칸은 채워지게 되는데, 그 빈칸을 채우던 중요한 기억들 중에 단풍나무 씨앗이 있다. 맑은 날 솔바람이 불어 날려준 단풍나무 씨앗이 영혼의 손바닥에 떨어진다. 그 순간에 느낀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그것이 삶의 의지가 없던 영혼의 빈칸을 채운 가장 중요한 기억이었다.


그 장면이 오늘도 계속 생각이 난다. 고요함,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 그런 것이 필요한 때인가 보다. 그리고 내 삶에서도 그런 것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이 때때로 있다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영혼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주머니에 넣었다. 맛있게 먹었던 피자의 가장자리, 미용실에서 먹었던 막대사탕, 파란 실이 감긴 귀여운 실패, 그리고 단풍나무 씨앗. 나는 오늘 몇 개의 물건을 주머니에 넣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 하루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들은 무엇이 있었나.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것들을 주머니에 담아볼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에요! 저는 그것을 위해서 살기로 되어 있었어요!' 라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자연은 아니 그렇지 않아, 라는 답을 돌려준다. 영혼은 특별히 어떤 것을 하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증처럼 결국 주인공은 원하던 것을 이룬 직후 상실감을 느낀다. 최근 친구가 건강상의 이유로 평생 동안 하려고 계획했던 것을 못하게 되었다. 마음을 정했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은 길로 들어섰더라도 삶은 이어지고, 거기에서 우리는 주머니에 넣을 소중한 순간들을 계속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같이 만들어 나갈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약하면서 친구를 응원했다.


우리는 살 준비가 되어서 태어난 것이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 마음은 어떤 경우에도 삶을 이어지게 하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뭔가를 이루기도 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얻는다. 그러니까 걍 살면 된다는 뜻인 거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냥 살면 된다. 요즘 인생이 팍팍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영화 <소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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