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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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에서 나는 많이 걸어 다녔다. 내가 사는 캥거루 포인트에서 시티의 중심지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걷기에는 상당한 시간이긴 했지만 교통비 3달러를 아끼려고 나는 주로 걸어 다녔다. 집에서 육교를 하나 건너면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는 브리즈번을 가로지르는 큰 강 위에 있다. 다리는 꽤 높았고 길었다. 나는 까마득한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그 다리를 건너 다녔다. 밤에는 어두워 강물은 깜깜한 속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 나만 바라봐 달라는 듯 강변의 늘어선 고층 빌딩이 환하게 빛났다. 강물에 비친 건물은 물과 함께 일렁일렁거렸다. 절대 가질 수 없는 보석처럼 물에 비친 건물은 더욱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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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은 어두웠다. 반짝이는 시내를 등지고 캥거루 포인트를 향하는 걸음은 늘 무거웠다. 나의 하루는 대개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주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월의 발걸음이 쌓여서 나의 진로가 정해졌다. 언론사 시험을 쳐서 기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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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타고난 오지랖이 있어서 강연 같은 것을 해도 적성에 잘 맞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단기에 강연을 할만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럼 기자를 해야겠다. 이 생각을 퍽 괜찮다고 여기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생각들은 그다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그냥 반짝반짝해 보이는 어떤 것을 손에 쥐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매일 오고 가는 길 위에 쌓인 내 무거운 발걸음을 외면할만한 허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방송기자가 된다면 텔레비전에 나올 수 도 있겠네, 하는 알량한 생각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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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언론사 스터디를 하면서도 나는 확신이 없었다. 언론사 시험과 겹치지 않는 어지간한 회사들에도 모두 지원했다. 그리고 그중 합격한 회사에 들어갔다. 2009년의 취업박람회에도 창업부스 같은 것들이 좀 있었다. 그 부스를 보면서 요즘 같은 시절에 무슨 창업이야, 이런 생각을 했다. 창업해서 성공하는 건 옛날이야기 아냐? 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한다. 월급쟁이로는 절대 대박이 안나, 진짜 성공하려면 회사를 차리거나 지분을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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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오십 개쯤 써서 내고 나는 단 한 개의 회사에 합격했다. 대기업의 계열사였다. 그리고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런 것으로 만족했다. 인정에 급급했다.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가 얼마나 알만한 회사인가, 그게 친구들 사이에서 내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입사를 하면서 언젠가 내가 이 회사의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본부장이나 상무라는 이름을 가지는 그런 직책을 내가 가지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