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건강성 측정 이야기(3)
공개범위의 산을 넘어 건강성 설문을 오픈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쉽게 응답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으로 설문을 보냈다. 당시 구글 설문에 중간저장 기능이 없어서 서베이몽키를 유료 버전으로 구매해서 사용했다. 설문 채널로 카톡을 사용한 것은 무척 유효했다. 점심 먹기 전,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처럼 설문 응답하기 좋은 시간을 골라서 매일 한 번 알림을 보냈다. 금요일 퇴근길엔 차량 정체가 있으니 그 시간을 활용해서 응답할 수 있도록 퇴근 시간에 알림을 보냈는데 많은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간 전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은 저조한 응답률을 보여왔었는데, 건강성 측정 첫 해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응답을 받아서 응답률만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1. 응답자의 불안
조직별로 응답을 정리하고, 응답률 집계도 정확하게 해야 했기 때문에 응답할 때 누가 응답했는지를 수집했다. 그것도 최대한 반감을 적게 하기 위해서 개인화된 설문 링크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수집했는데, 최고의 IT회사답게 구성원들은 그 링크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응답이 정말 비밀 보장이 되는지를 불안해하는 분들도 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많은 회사들이 이런 조직설문을 리더의 평가로 사용하거나 부정적 응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례도 종종 있기 때문에 불안해 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응답을 했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을 정하고 정보열람 권한자의 이름을 명확하게 적었다. 권한자를 00팀 업무 담당자,라고 적는 것보다 '00팀 홍길동'이라고 명시할 때 사람들은 좀 더 안심할 수 있게 된다. 수집하는 정보와 정보열람권한자를 공지사항에도 적고, 설문 페이지 상단에도 적고, FAQ에도 적고,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적었다. 재밌는 게 건강성 데이터의 원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직책자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 왜냐면 자기 조직의 구성원이 어떤 응답을 했는지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담당자인 내 리더도 나의 응답은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당시 원본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설명회 때도, 공지사항에도 공개 범위와 데이터 처리방식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그래도 설문이 끝날 때까지 이 질문은 계속되었다. 응답자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아무리 많아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리더의 불안
조직 측정을 처음 할 때 일부 리더들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조직마다 특성이 다른데 그런 서로 다름이 무시되고 동일 선상에서 조직간 비교가 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매출 압박을 많이 하고 있는 리더는 아무래도 응답이 좋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첫 해에는 전사 결과만 공개한다는 점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첫해에는 긍정이 많은 부서도, 아닌 부서도 있겠지만 그건 모두 출발점일 뿐이고, 결국 이듬해에 거기서 응답이 어떻게 변해 나가는지가 진짜 성적표라고 생각했다.
이것보다 설득이 더 어려웠던 쪽은 이 측정 결과를 가지고 조직을 더 좋게 만드는데 열성적인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뭔지 알고 싶어 했고, 또 해결해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설문 전부터 결과를 얼마나 자세히 볼 수 있는지 궁금해했고, 누가 어떤 응답을 했는지도 제한적으로 알려주면 안 되겠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의지인건 알지만 이런 식의 데이터 활용은 많은 잡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운영할 설문이었으므로 이런 요청은 모두 완곡하게 거절했다. 특정인의 응답 공개는 불가능하고, 정말 불가피할 경우 응답자 본인의 동의를 얻었을 때만 가능하다고 정책을 고수했다. 감사하게도 리더들 모두 설득에 수긍해주었고, 그래서 특정인의 응답을 오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 인사팀의 불안
첫 해에는 측정 변수가 많았다. 개인 긍정적 일경험뿐만 아니라, 팀 운영은 잘 되는지, 전사적 의사결정 프로세스나 인사정책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함께 묻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평가/보상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결과가 특정 부서에 매우 공격적인 내용이 될 수 있었다. 실은 어떤 문항이 들어가도 그게 특정인이나 특정부서의 업무에 내용이라면 공개적인 평가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에 관련 부서와 조율을 충분히 해야 하는데 첫 해에는 그렇게 잘 챙기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양해해준 주변 부서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 응답이 끝나서 구성원에게 전사 결과를 공유할 때 건강성 담당팀에서건, CEO건 대 구성원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개선할 구체적인 방법을 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결과를 본 소회라도 구성원들 앞에서 말해야 했다. 학창 시절 성적표가 나왔을 때 그걸 들고 가서 부모님에게 뭐라도 말해야 하는 심정과 비슷하달까. 책임은 져야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그 성적표를 들고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경영진,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가야 하는 설문 실행팀도 나름의 불안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