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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Jun 13. 2023

결과는 알겠고요, 그래서요?

조직 건강성 측정 이야기(4)

 측정 첫 해에는 전사 리포트, 그리고 가장 큰 조직 단위의 리포트만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리포트의 숫자는 늘어났고, 3년째에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회사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도 결과 리포트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응답이 4개 이상이면 누구나 우리 조직의 리포트를 볼 수 있었고, 우리 팀 상위 조직 응답과 비교해서 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리포트 대상이 전사로 늘어나면서 리포팅 난이도는 훨씬 올라갔다.



0. 이해시키려면 구조가 간단해야 한다


예측을 하려면 블랙박스가 더 낫다는 말이 있다. 컴퓨터가 인간에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수행을 거치면 결과 예측도가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직측정은 그렇지 않다. 측정의 결과로 사람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설명을 해내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수록 실행력은 더 올라간다. 그래서 간단한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좋다.



전사적 요소를 Alignment, 실행과 관련된 단위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Execution, 그 결과로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Energy로 명명해서 측정의 큰 카테고리를 세 개로 나눴다. 설문 응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 조금씩 더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다. 


'나는 000 한다' > '내 동료들은 000 한다.' > '회사는 000 한다'

주어가 '나'일 때 긍정응답률이 높게 나오고, 더 큰 집단인 '회사'로 가면 긍정응답률이 줄어드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래서 하나의 요소를 측정할 때 주어가 다양한 문항을 섞어 쓰면 결과를 해석하기가 어렵다. 주어가 '나'로 된 문항이 많을수록 응답이 긍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주를  전사/ 팀/ 개인, 이런 식으로 나누고 그 안의 요소를 작게 나누어 측정하면 해석이 훨씬 용이해진다.



1. 전사 리포트는 CEO와 경영진의 숙제


운 좋게도, 조직 측정을 하는 5년 동안 CEO와 경영진이 결과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전년 대비 어떤 카테고리 응답이 나빠지고 좋아졌는지, 또 전사적인 응답 추이들은 어떤지 무척 집중해서 들었다. 내 생각보다 최상위 리더들이 개별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부정적 트렌드가 발견된 조직에 대해서도 해당 조직 리더를 잘 도와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이 결과를 평가처럼 쓰지 말아 달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해에는 방향성 응답을 직책별로 보니 중간의 특정 집단에서 긍정응답이 확 줄어드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그래서 CEO가 중간리더들을 직접 만나서 티타임을 가져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경영진이 이를 수락했다. 감사하게도 문화를 담당하는 팀에서 진행을 맡아 매월 티타임을 만들어주셨는데, 이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방향성 응답 결과를 보니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났다. 조직 변화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면 큰 효과가 있다. 그리고 실은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매일 같이 새로운 이슈가 터지는 상황에서 이런 이벤트를 꾸준히 해준 경영진의 노력도 빛났던 대목이었다.

전사 리포트를 보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경영진이지만 실천을 만들어 낼 책임은 담당 부서에 있다. 작동할만한 액션 아이템을 제안하고, 제안이 지속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주변 부서의 도움을 얻어내고 이런 일들이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건강성 리포트가 계기가 되어 큰 단위 조직개편이 일어나거나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부서 개편이 건강성 부서가 한 일입니다~라고 광고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개별 크루들이 느끼기에는 건강성 측정 해서 뭐 하나 좋아지는 것도 없는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실제 응답률도 매년 줄어드는 어려움이 있었다.



2.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본부단위 리포트


회사에 있을 때 실장까지는 1:1로 찾아가서 리포팅을 했다. 보통 25명 내외였으니까 대체로 백 명 이상의 조직을 리딩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 사이즈가 100명 정도만 되어도 리포팅할 내용이 꽤 많은 편이다. 

전체 조직 결과도 브리핑하지만 해당 결과를 여러 가지 방향으로 쪼개서 본다. 직군별 / 근속연수별 / 직책별 / 하위조직별 등등 다양한 기준으로 나눠서 특정한 경향성이 있는지를 본다. 대체로 직군 응답 트렌드가 세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서 전사적으로 직군 트렌드가 강렬하게 나타나면 해석할 때 이를 보충 설명하기도 한다. 

보통은 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리더가 적절한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분석팀도 이 시간을 통해 몰랐던 조직 히스토리를 많이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구성원 긍정일경험 강화를 위해서는 이 행동을 개선시키는데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이런 식의 한 두 가지 포인트를 강조하고 마무리한다. 대체로 본부단위 리포트에서는 리더들이 적극적이라서 추가적인 분석이나 세미나를 요청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심증으로만 갖고 있던 생각들을 데이터를 통해서 검증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리포팅을 환영해 주시는 리더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3. 팀 단위 리포트 잘 써먹기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막막한 사람들은 팀장이다. 리포트는 봤는데 그래서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집단에서 나온다. 직책자와 비직책자 사이에 바로 껴있는 집단, 바로 최소단위 조직장들이다. 팀 단위 리포트는 상황에 따라서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1) 조직장과 1:1 코칭

팀 내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은 리더다. 리더는 팀원들에게 말 못 할 고민들도 갖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털어놓고 어떤 행동을 해나갈지 정하는 코칭을 하면 좋다. 결국 팀워크라는 것도 팀원들의 개인성을 조합해서 만드는 것인데 팀원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도 리더에게 달린 경우가 많다. 나는 건강성 담당자이자 코치로 리포트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 어떤 점들이 눈에 띄는지 묻는다. 잘 듣고 리더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하면서 액션플랜을 리더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직장이 포기하면 조직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리더를 격려하고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2) 팀 세미나를 통해 액션플랜 만들기

팀 세미나는 신청기반으로 운영한다. 소통하는 팀 문화가 어느 정도 확보된 팀들에서 신청이 들어오고, 이런 경우 결과도 아주 좋은 편이다. 2시간 정도 시간으로 진행하는데 팀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실행 아이디어를 받아서 합의를 도출한다. 세미나가 끝날 때 큰 종이를 제공해 합의된 액션플랜을 적어서 돌아가시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합의해서 선언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직장이 혼자서 할 때보다 훨씬 실천이 잘 일어난다.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하다가 결국 퍼실리테이션과 코치 인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팀 세미나는 200번 이상한 것 같고, 조직장 코칭도 30회가량 진행했다. 건강성 측정을 하면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한 명이 없다는 점에서 리더십은 완성이 없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리더를 하면서 사람을 천 명을 만났어도 다음번 팀구성할 때 만난 1001명째 사람은 또 1001번째의 새로운 캐릭터일 테니까. 어렵기도 하지만 좋은 점은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더십의 영어 어원은 고대영어 'loedan'에서 나왔다고 한다. '인내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내하는 길을 가는 많은 리더들에게 조직 측정이 쓸만한 항해 도구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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