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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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 와서 나는 일이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설픈 기획을 올리면 사람들이 이렇게 해보면 더 좋아질 거라고 댓글로 많은 의견을 주었다.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리더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고,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되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고 면접관 의견을 들어 연봉을 산정했다. 연봉 제안을 수락한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쓸 영어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름을 열심히 지어서 보내주었다. 그들은 매주 월요일에 입사를 했다. 일요일 밤이면 메일로만 만나온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설렜다. 출근길의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2
그때의 나의 하루 일과는 항상 다음날 끝났다. 목표는 12시에 퇴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정을 넘기는 날이 더 많았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일했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몇 달이 지나자 팀 구분 없이 친해졌다. 별로 크지 않은 회사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좋은 팀원들을 만나서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목표가 생겼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에게 맞는 인사시스템을 만드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그때로부터 3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인사업무를 오래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일요일 밤이면 출근하기 싫은 마음에 괜히 더 피곤해진다. 나는 매일 칼퇴근을 한다. 그런데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예전보다 더 힘들다. 남들은 거기 좋은 회사가 아니냐고 한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여기는 좋은 회사가 맞다. 열 시에 출근하고 일곱 시에 퇴근하면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내가 한편으로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왜 충분히 괜찮은 환경에서 이렇게 매일 인내심의 즙을 탈탈 짜내고 있는 걸까.
4
첫 회사에서 나는 기업문화팀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오죽하면 내가 기업문화팀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팀장은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나의 자기평가 스코어보다 훨씬 못한 스코어를 나에게 주었고, 의견란에는 이런 말이 적혔다. 외부활동하는 만큼 팀 업무에도 더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나는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욕 안 먹을 정도로 충분히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원하는 일을 할 때와 해야 하는 일을 할 때의 나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때 팀장 눈에도 훤히 다 보였을 것이다. 내가 적당히 하고 마는 것이.
5
상황은 많이 변했다. 그리고 훨씬 복잡해졌다. 모든 이해관계를 내가 다 파악할 수도 없고, 또 누구도 나에게 그것을 다 설명해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이건 왜 하는가. 이걸 하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내 문제는 궁금한 것이 없어질 때까지 물어봐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방식은 다른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어떤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당연한 걸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그것을 다 설명해줄 시간이 부족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곳에서는 내가 궁금한 걸 끝까지 물어보면 안 되었다. 나는 물어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6
호모 사피엔스는 대규모 협력을 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서 다른 종의 인류를 멸종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동물에 비해 단기간에 먹이사슬의 끝까지 올라갔다고 사피엔스의 저자는 주장한다.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이토록 협력을 잘하는 종으로 태어났는데, 그런데도 집단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이토록 고민에 빠져야 하다니. 정말 호모 사피엔스로 살기 진짜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