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day-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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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사람이 많이 들어올 때는 일주일에 열 명도 넘게 입사를 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종이로 먼저 만났다. 거기에는 사진이 있는 경우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이 없는 사람은 더 궁금했다. 일했던 회사, 전공한 학문, 나이 같은 정보들을 보면서 외모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들어오면 친구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좀 더 관심이 갔다. 신규 입사자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덥썩 저랑 동갑인데 친하게 지내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들먹이면 위협적일 듯 싶었다. 그래서 목전까지 나온 말을 삼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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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히 사람들의 이력서를 들여다보는 나에게 누가 그랬다. 연애할 것도 아닌데 무슨 이력서를 그렇게 열심히 보냐고.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세상 일은 모르는거죠, 그 중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죠! 그건 정말 백퍼센트 농담이었는데. 결국 나는 그 시절 입사했던 사람과 결혼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회사는 남편을 만나는 우연을 제공해준 장소라는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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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나는 최종합격한 지원자 몇 명을 놓쳤다. 내가 연봉제안을 하기 직전에 다른 회사에서 오퍼를 한 것이다. 순서가 조금만 빨랐어도 고민의 여지라도 있었을텐데, 한 번 결정내린 사람들은 마음을 잘 돌리지 않았다. 연봉을 산정해야할 사람은 늘 밀려있었다. 그중에 시급하게 연봉 제안을 해야하는 사람은 면접관이 따로 알림을 주기로 했다. 남편은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을 하셨으니 당장 내일까지 현재 처우를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남편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없다며 내일까지는 정리해서 보내드리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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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적정 처우를 계산해 주면서 하지만 그거보다 좀 낮은 금액을 받아도 된다고 남편은 메일에 썼다.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 싶었다. 그는 나와 친한 동료의 팀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오며가며 얼굴 본지 2년이 지나서 밥을 한 번 먹었다. 둘이 처음 밥먹는 자리라 어색한데 하필 회사 근처의 파스타 집을 갔다. 어라, 이 미친듯한 소개팅 분위기는 뭐지. 그리고 우리는 세 번째 밥 먹을 때 사귀기로 했다. 그리고 이듬해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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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한다. 덕분에 나는 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다. 퇴근하고 주차장에 가서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또 무척 행복해진다. 회사에서는 기분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퇴근 문턱부터 출근 문턱까지 내내 행복보증수표랑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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