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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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가족들과 고성에 다녀왔다. 고성에는 몇 군데의 명소가 있다. 그중 한 군데는 김일성의 별장이다. 나는 물었다. 근데 김일성 북한 사람인데 여기 왜 별장이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친오빠는 대답했다. 여기가 38선보다 위잖아. 나는 말했다. 아 그건 나도 아는데, 그럼 여기는 북한이었다가 남한이 된 거야? 전쟁 두 번한 거야? 내 말을 들은 오빠는 혀를 찼다. 너는 도대체 역사공부를 뭘로 한 거냐.
2
그제야 한국전쟁 전에도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한국 근현대사를 수능시험 선택과목으로 쳤으니 분명 엄청 외웠을 텐데, 시간이 지나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 때문에 휴전하면서 반토막 난 걸로 완전 착각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소련과 미국이 대한민국 땅따먹기를 38선으로 한 것이었다. 궁금해서 다시 찾아보니 반쪽 짜리 정부를 먼저 세운 것은 남한이었다.
3
재밌게도 고성에는 이승만 별장도 있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다 좋아한 동네였나 보다. 이승만 별장에는 이승만의 업적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한 가지 사진을 봤는데 아들 봉수와 함께, 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별장에는 이승만이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을 했다고만 적혀있었고 다른 혼인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승만이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한 나이가 거의 60에 가깝다. 근데 그 이전에 어떻게 아들이 있을 수 있는 거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자 이승만이 원래 박승선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슬하에 아들 봉수가 있었는데 이승만은 아들만 미국에 불렀다. 봉수는 미국에서 1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의아한 것은 한국에 남은 박승선은 고아원에서 은수라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이 사람이 1949년까지 이승만의 양자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은수와 친족관계 부존재 판결을 받는다. 널리 알려서 좋을 것이 없는 사실이라서 박승선에 대한 내용은 모두 빠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그 옆에는 자그마한 이기붕 별장도 있었다. 이기붕은 누구지... 하고 생각했는데 가서 읽어보니 419 혁명을 유발한 장본인이었다. 315 부정선거로 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별장에 가서 보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기붕과 이승만이 본관이 같은 전주 이씨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태조 이성계의 그 이씨 가문이다. 꼭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승만은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을 양자로 들였다. 당시에는 청와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는데, 이기붕의 집은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렸다고 한다. 정치적 일인자와 이인자를 각각 양아버지와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가짜 이강석 사건이 유명했다는데, 누군가 이강석을 사칭하고 지방을 돌며 지역장들에게 돈과 접대를 받고 다녔던 것이다. 나중에 가짜 이강석이 붙잡혀 재판을 받는데 그 재판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한다. 판사가 몰린 관중 사이를 뚫고 나오다 법복이 찢어지고 했다는 말이 있었다.
5
이승만이 하야하자 이강석은 엄마, 아빠, 동생을 모두 총으로 쏘고 자신도 쏘아 자살했다. 가족 합의 하에 이강석이 쐈을까, 아니면 이강석 마음대로 다 쏴버리고 자기도 죽은 걸까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봤지만 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나무위키에서는 이강석을 20세기 정유라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100년이 지났는데 왜 저 세계는 여전히 바뀐 것이 없는 느낌이 들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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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38선을 경계로 소련과 미국이 대신 운영할 때가 궁금했다. 그때도 남북한 이동이 불가능했을까. 전쟁 전이니까 적국도 아니었을 거고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성에 있는 김일성 별장은 3층으로 되어있다. 거기 3층에 올라가면 맨눈으로도 금강산 자락을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엄마가 저게 금강산 자락이야,라고 말해줘서 알았지 말 안 해줬으면 그냥 갈 수 있는 산인 줄 알았을 것 같다. 못가는 나라라고 막아 놓으니까 더 궁금하다. 언젠간 꼭 북한 관광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