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자-2

day 12

by Lucie


1

영화 <암살>을 보면 염석진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이정재가 연기했던 인물이다. 이정재의 '몰랐으니까'라는 대사는 유명세를 탔다. SNL에 권혁수가 성대모사를 해서 나도 키득거리며 곧잘 따라 하곤 했다. 영화 속의 이정재의 대사는 '몰랐으니까'와 '이상입니다' 이 두 가지만 기억난다.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몰랐으니까의 다음 대사를 알게 되었다.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랫겠나!'


2

염석진은 독립운동가였으나 변절하여 일본 경찰에게 협조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해방 이후 과거의 행적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된다.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염석진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해방이후 실제로 이러한 재판들이 벌어졌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편성되었다. 염석진은 두 명의 실존인물을 믹스해서 만든 캐릭터라고 하는데 이 중 한 명이 노덕술이라는 사람이다.


3

노덕술을 검색하면 위키백과에 이렇게 나온다. 노덕술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위키 맨 하단의 관련 외부 링크 두 개가 있는데 링크의 제목은 이렇다. 친일 고문경찰의 대명사, 한국 경찰의 원죄 노덕술. 이승만 별장에서 시작된 궁금증이 나를 거기까지 가게 만들었다. 노덕술은 일제시대에 이름을 날린 고문경찰이었고 당연히 반민법에 의해 기소가 되었다. 기소된 와중에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고용해서 반민특위 15명을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출신인 백민태는 살인청부의 실행을 주저했고, 결국 자수를 했다. 노덕술은 일제 고문경찰에 반민특위 청부살해를 시도한 죄목이 추가된 셈이다. 이상태에서 이승만은 노덕술은 반공투사이니 풀어주라고 반민특위에 요청한다. 검색해보면 이때 노덕술이 죽여달라고 했던 반민특위 15명의 명단까지 다 나온다. 그런데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더 할 말이 없는 역사...


4

이승만이 노덕술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반민특위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국회프락치 사건과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난다. 친일파를 적발하고 체포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공산당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감옥에 갇힌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더 황당한 것이, 경찰이 특경대를 습격했다. 친일 경찰로 지목된 최운하를 내놓으라며 경찰이 반민특위 조사를 돕는 기관인 특경대를 폭행하고 감금했다. 특별검찰관도 경찰에게 몸수색을 당하고 특별검찰부장은 경찰에게 총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승만은 AP통신에 이 사건은 자신이 직접 경찰에 지시한 것이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모든 일들이 49년에 일어난 일이고 그 뒤에 전쟁이 터진다. 빠밤...


5

남한으로 쳐들어온 북한은 빠르게 부산까지 점령을 했다. 북한은 토지를 지주로부터 강제 환수해서 농민에게 주었다. 8시간 노동법도 만들고 친일, 친미 인사들을 공직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제도 시행 3개월 만에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났다. 북한은 건국일을 조선인민공화국 선포일인 9월 6일로 하고 있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은 의외로 이승만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될 당시 이승만은 한국에 없었다. 선포 다음달인 10월에 귀국해서 주석직을 요청받은 바 없고 수락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6

과거의 어떤 역사는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도 그 시대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아는 것은 아니니까,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별로 쓸모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카너먼 같은 심리학자는 인간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신념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신념이란 아주 조금의 앎과 어마무시한 무지가 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믿음들도 사실은 아주 빈약한 지식 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좋은 역사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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