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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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는 동요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잘 부르기도 해서 노래 깨나(?) 부르는 축에 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반에서 나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애는 딱 한 명이었다. 확실히 그 아이는 노래를 무척 잘했다. 고음에서도 소리가 가늘어지지 않고 더 풍성하게 나왔다. 나는 아무리 불러봐도 목소리가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 친구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늘 흠을 잡곤 했다. 노래는 잘 하지만 뚱뚱해. 사실 저 좋은 목소리는 뱃살에서 나오는 거 아닐까? 난 날씬하니까 쟤 만큼 노래 못해도 상관없어. 내가 훨씬 낫지.
2
다행히도 나의 재능 중 하나는 주제 파악이었다. 좋게 말해 주제파악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긴 하지만. 덕분에 중학교 때쯤에는 그런 질투심도 거의 없어졌다. 누군가 나보다 훨씬 나은 것을 보면 그저 부러웠을 뿐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얼굴이 예쁜 친구도, 친구가 많은 친구도 그저 부러웠을 뿐. 특별히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3
그러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의 성적이 크게 오르는 일이 있었다. 여러 해 등하교 길을 항상 함께 하는 친구였다. 그때 한동안 패닉이 왔다. 왜 얘가 나보다 성적이 잘 나온 거지? 이제 내가 얘보다 못한 건가? 나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이제 내가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성적이 올라서 행복한 친구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있어도 즐겁지 않았다.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앓았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던 쪽은 친구가 아니라 내쪽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은 늘 나보다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 친구를 대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이제 무시하던 그 자리에 내가 있으니 불편해진 것이다.
4
그걸 깨달은 이후 나는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성적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한 사람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걸 질투하면 안 된다. 되 뇌인 덕인지, 아니면 그 뒤로도 친구가 계속 그 성적을 유지해서 그냥 프레임이 그렇게 굳은 건지, 한 두 달 지나고 나니 질투도 수그러 들었다.
5
오늘은 점심에 친구와 밥을 먹었다. 우리는 회사가 좀 더 작았던 시절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다. 지금은 작은 회사로 옮긴 동료의 이야기가 나왔다. 걔는 좋겠다, 질투 나는 거 보니 부러운가 봐. 친구는 말했다. 뭐 부럽긴 한데 거기도 뭐 하루하루 해야 할 일 많고 바쁘겠지. 나는 그런 식으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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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뭔가를 원한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갈증은 금방 해소된다. 그러나 또 다른 목마름이 발생한다. 목마른자리는 가물어서 금방 갈라지고 틈새로 어두운 마음이 자란다.
7
나는 주로 인정에 목말랐던 것 같다. 인정받는 사람들이 가진 재주가 부러웠고, 그 유명세도 부러웠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도 부러웠다. 인정받고 싶어서 남의 눈에 비치는 나만 바라보다가 나를 많이 잃었다. 아무 이유 없이 공황장애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나를 못 챙겨서 그런 병에 걸린 것 같다.
8
최근에는 질투를 한 적이 없다,라고 적으려고 했는데. 쓸려고 보니 이 말이 진짜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정말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짓말이다. 질투나는 마음을 애써 외면한 적이 최근에 있었다. 그런 마음이 자라나서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고 싶다. 말랑한 마음으로 건조한 가을을 버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