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day-18

by Lucie

1

이십 대에는 젊음이라는 낱말 하나로 모든 창을 다 막아낸다. 일 년도 다니지 않은 회사를 때려칠 때 사장님도 나에게 말했었다. 서른 전에는 어떤 도전도 다 괜찮다고. 나에게 이십 대는 무기와도 같은 젊음이었다. 서른은 그와는 약간 달라 보였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과장님들 나이. 이십 대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포기하고 그래서 더 찌들었지만, 조금은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나이.


2

막연히 삼십 대에는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십 대가 끝나가는 12월 31일에 카페에서 일기를 썼다. 갖고 싶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썼다. 시간이 흐르면 나의 모난 부분도 조금은 닳아 없어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3

하지만 세 살 버릇은 여든 간다고 한다. 야속한 속담이다. 나는 세 살 때 내가 어땠는지 생각도 안 나는데 내 기억으로 따라 잡지도 못할 나이에 생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니. 어찌 보면 세 살 때 이미 세상 다 깨쳤다는 소리인가 보다. 지금까지도 철없이 방황이나 하고, 그런 걸 보면 세 살 이후로 사람은 그냥 계속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제2의 사춘기, 제3의 사춘기라는 말도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4

언젠가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은 소설에는 할머니 세 명이 나온다. 세 할머니는 학창 시절부터 친구다. 두 할머니는 성격이 좋은 한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서로 질투도 하고 오해로 싸우기도 한다. 할머니가 되고도 밀당을 주고받는다. 거기에 나온 한 할머니의 독백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바닥을 치우려고 살비듬을 손바닥으로 쓸어서 치우면서, 나이 들어 살에서 비듬 떨어지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되어서 소름이 끼친다는 내용이다.


5

서른이 되면 나도 예전에 본 과장님들처럼 지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과장님들처럼 사는 것이 적응이 안된다. 다만 자꾸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네가 이제 주니어가 아니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나이가 있으니 커리어 방향을 한 가지로 정해야 한다. 나이가 있으니 애를 빨리 낳아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렇게 심한 제약사항이었는지 예전엔 잘 몰랐다.


6

그렇다고 해서 이십 대가 나에게 충분한 방패가 되어주었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이십 대 중반에 멘탈이 무너졌다. 갑자기 세 살짜리 어린애가 된 것처럼 엄마가 차로 회사를 출근시켜 주었다. 초등학교 때 아파서 엄마가 나를 업고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 무겁지 않냐고 하니까 괜찮다고 했다. 스물다섯에 내 출근을 시켜주는 엄마는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하지마.


7

어른이 되는 건 제약사항을 잘 다루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는 적은 것도 많은 것도 모두 어려움이 있다. 나는 언제나 어떤 이들보다는 어리고, 어떤 이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다. 즉 내게는 항상 제약사항이 있어왔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그 상황들을 내가 헤쳐나갈 때 얼마나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게 나의 관심사다.


매거진의 이전글성실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