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day-22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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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 온 이튿날 아침 페북에서 한 영상을 봤다. 강서구의 장애인 학교를 짓기 위한 지역 주민 공청회 영상이었다. 장애 아동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에게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소리치며 울었다. 장애 아동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특수 학교는 혐오 시설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자신의 아이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고 아이에게 배운 것을 실천해보겠다고 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큰절을 했다. 모든 간곡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냉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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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페북에서 기사 하나를 봤다. 그 특수 학교 설립을 위한 부지가 폐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학교의 이름은 공진초등학교라고 했다. 지금은 마곡지구로 옮겨갔다고 한다. 옮기기 전에는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어린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였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하나더 생기면서 사람들은 공진초를 피해 다른 학교를 보내기를 희망했다. 무슨 자이인가 그런 브랜드 아파트도 들어오고 했다는 것 같다. 초등학교는 뺑뺑이 배정이 원칙지만 교육청에서 탄원을 받아들여 공진초가 아닌 학교로 우선배정을 해줬다고 한다. 공진초는 그래서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만의 학교가 되었다. 공진에 다닌다고 하면 또래들이 거지라고 놀리고 학원에서도 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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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회사의 사회공헌 담당자를 한적이 있다. 일산 지역의 어떤 단지에 주로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회사 사람들은 그 동네에 봉사활동 할 데가 있냐고 반문했다. 번듯한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단지만 영구임대주택이었다. 저소득층, 한부모, 조손가정들이 입주한 곳이다. 복지사는 엄마들이 기를 쓰고 이 단지를 빠져나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단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왕따를 당한다고 했다. 왕따 안 당하게 하려고 악착같이 노력해서 단지를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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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 주택에서 공진초로 가는 길이 자기네 단지가 되지 말라고 길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현실버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이 안좋은 사람은 잠재적 위험요소로 취급하고 접근을 차단한다는 그런 시나리오. 한편 특수학교 설립이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거기 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주의는 사익의 추구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 자녀의 교육받을 권리보다 나의 사익추구권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냉정한 동네주민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공진초의 비극을 경험했다. 특수학교 설립이 가져올 환경변화의 간접판을 체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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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 부는 21세기 인류가 선택한 계급사회다. 현실의 사람들은 이것이 아버지가 왕이면 나도 왕이고 아버지가 노예면 나도 노예인 사회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신과 같은 생활을 한다. 전용기를 타고 단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소환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죽기전에 자신의 몸을 냉동보관해서 미래로 보낼 수도 있다. 또 몇십년간 한국사회는 법보다 돈이 먼저인 시간을 살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없고 빽없으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대한민국 권력의 최상위층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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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정위에서 강제법인분할을 도입할지 검토한다는 뉴스를 봤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시행되는 법이라고 해서 신기했다. 나는 국가가 강제로 기업을 분할시킬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삼성이나 네이버를 분할시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해봤다. 아니 멀리 안가고 내가 다니는 회사를 분할하라고 강제 지시한다면? 나부터 반대하는 사람이 되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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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회의 어느 계급쯤에 있는 걸까.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돈과 관련된 단어를 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에게 더 인색하게 행동한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나는 일층에 스타벅스와 편의점, 노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건물에 산다. 편리해서 좋지만 그 환경들이 나에게 반드시 이롭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얻고 잃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주 웃으면서 살고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가까운 곳에는 남은 것을 나누면서 살면 좋겠다. 내 계급이 내가 가진 재산으로 매겨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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