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8
1
주말마다 쏘잉 공방에 간다. 재봉틀로 물건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처음에는 파우치, 그다음은 에코백을 만들었다. 내가 들고 다닐 클러치를 만들고 가장 최근엔 남편 옷을 만들었다. 재봉틀로 물건을 만든다는 건 평면의 천으로 입체를 구현하는 일이다. 파우치를 만들 때부터 이 작업이 꽤나 공학적 사고를 요한다는 것을 알았다. 티셔츠에 비해서 와이셔츠가 더 입체적이다. 입체적일 수록 조각이 더 많다. 천 조각이 더 많으면 더 많은 바느질이 필요하다.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두 개의 천을 연결하는 것이고, 이는 곧 시작과 끝 혹은 만나야 하는 어떤 자리가 정확히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옷이 입체적일 수록 만들기는 더 어려워진다.
2
옷을 만들려면 천조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조각들을 단번에 천에 그려서 오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천에 대고 그릴 옷 본을 뜬다. 같은 옷도 사이즈마다 본이 조금씩 달라진다. 본을 열심히 오린 뒤에 천에 대고 그린다. 그린대로 천을 자른다. 이때 천이 그냥 면이면 다행이지만 나처럼 극세사 같은 것을 쓴다면 불행이 시작된다. 털이 온 사방에 날리기 시작한다. 공방에 털이 날아다니고 내 옷에도 마구 붙는다. 최대한 가만히 잘라서 바느질을 한다.
3
가방이나 파우치는 미싱으로 박아서 뒤집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옷은 다르다. 안감이 없을 경우 안쪽이 사람의 피부에 닿는다. 그래서 박아서 안으로 들어가는 시접을 모두 오버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공방에 가면 공업용 오버록 재봉틀이 있다. 이 녀석은 책상까지 한 세트로 되어 있다. 거대한 물건이다. 아름답게 알아서 천을 잘라서 깔끔하게 마감을 해준다. 오버록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은 말했다. 오버록은 시접을 잘라서 바느질을 하는 것이고 가정용 미싱이 완전히 오버록이 된다고 하면 다 거짓말이다. 이것은 공업용 미싱만 할 수 있는 일이다.
4
이렇게 옷을 만들어보면 그 뒤로는 옷이 다르게 보인다. 주름을 어떻게 주었고, 마감이 어떤지 바느질 간격까지 눈에 보인다. 그리고 더 많은 옷을 더 많은 소재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하지만 공방에서 일주일에 세 시간 재봉틀 쓰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재봉틀을 사고 싶지만, 문제는 놓을 공간이다. 선생님에게 공간때문에 재봉틀을 못 사고 있다고 하니까 포풍 공감을 해 주셨다.
5
천을 펴고 재단할 공간, 재봉틀을 놓을 공간, 그리고 다리미 판과 다리미를 놓을 공간이 한꺼번에 필요하다. 공업용 오버록 미싱은 꿈도 못 꾼다. 공업용 오버록 전용 미싱을 들일 자리는... 정말 공방을 차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6
나는 폴리머클레이 아트로 자격증을 땄었다. 클레이는 장비가 많아도 책상을 몽땅 치우면 그 공간에서 할 수 있었다. 물론 켜켜이 쌓인 폴리머클레이 전용 오븐이며 재료들이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래도 책상만 희생하면 어찌어찌 되긴 했었다. 그런데 재봉틀은 그 이상이다. 목표는 폴리머클레이와 재봉틀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폴리머클레이는 열을 가하면 단단하게 굳어서 플라스틱처럼 된다. 즉 단추 같은 것을 내 마음대로 만들 수가 있다. 말도 안 되는 단추를 만들어서 말도 안 되는 옷에 달고 그걸 입고 다니고 싶은데! 그 로망 실현을 위해서 대량의 공간이 필요할 기세다...
7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이룰 것이다. 나만의 공방을 갖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