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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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성친구가 생긴 것은 열세 살 때쯤이었다. 성당에서 알게 된 한 살 많은 오빠였다. 눈망울이 사슴 같고 찰랑이는 머릿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오빠와 나는 성당 끝나고 떡볶이를 같이 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 시절엔 핸드폰도 없었고 집전화로 연애질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성당 외엔 거의 만날 일이 없었다. 사귀었던 오빠는 친오빠와도 아는 사이였는데, 친오빠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걔가 뭐가 좋냐, 그런 식의 반응이었다.
2
그러게, 뭐가 좋았던 걸까. 얼굴이 귀엽게 생겼던 것 빼고는 멋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이후의 연애는 고등학교 삼 학년 때 일어났다. 열여덟 인생 통틀어 두어 달의 이성교제가 전부였던 나에게는 도박 같은 일이었다. 고삼 때 연애라니. 동갑내기인 상대방은 개인적인 일로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수능시험을 보러 갈 때 동갑내기 남자 친구의 에스코트를 받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3
그 이후로는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가도록 혼자서 잘 살았다. 사람들은 왜 연애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네가 제일 먼저 남친 생길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했다. 한 선배는 내가 네 부모라면 걱정할 것 같다면서 네가 철벽을 너무 쳐서 그렇다, 이런 이상한 조언을 했다. 친구 중에서는 내가 남자 친구가 안 생기는 이유를 분석해 준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쓸모없는 응원이었다. 좋아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한 사람은 나를 안 좋아했다.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4
남편과는 사귀기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말했다. 저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남편이 응답했다. 저도요! 우리는 그냥 이런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항상 내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있어 주었다. 덕분에 남편과 연애를 하는 동안은 희로애락의 극렬한 감정 기복이 없었다. 드라마 같은 연애사는 없었지만 늘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쉽게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5
우리는 뉴스를 볼 때 같은 부분에서 놀라고 같은 부분에서 웃는다. 미니언즈가 나오면 둘 다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든다. 프렌치 불독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자기 전에 남편은 프렌츠 불독 동영상을 찾아서 보여준다. 나는 뉴스를 보다가도 자주 우는데, 그럴 때마다 눈물이 없는 남편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휴지를 찾아준다. 공방을 갖고 싶다고 일기를 썼더니, 나의 공방을 위해서 살겠다고 옆에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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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설가인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독설을 날렸다. 오늘 글감은 첫사랑이나 끝사랑인데요, 첫사랑 이야기를 쓰면 남편이 섭섭해할 것 같고, 끝사랑 이야기를 쓰자니 남편이 끝사랑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쓸 수가 없네요? 남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중간 사랑으로 저를 써주세요! 그래서 나의 오늘 일기는 중간 사랑이다. 중간 사랑이 언제까지 가려나. 끝까지 가면 끝사랑이 될 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