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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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심종자로 태어났다. 나보다 일 년 반 먼저 태어난 오빠는 예쁘고 순한 아기였다. 서른이 넘은 엄마가 결혼하고 낳은 첫아들이기도 했다. 나는 동네에 유명한 울보였다. 어렸을 때 앨범을 보면 통 우는 사진뿐이다. 또한 성별을 알 수 없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유모차를 들여다본 사람들이 아기가 참 하얗네요,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예쁘고 순한 아들 vs 안 예쁘고 맨날 우는 딸. 승패가 뻔한 이 대결에서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2
관종의 길은 늘 그렇듯 뻔하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내 홈페이지 방문자수를 보여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나는 고3 때도 매일 같이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오늘의 방문자수를 확인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 미니홈피에 접속할 수 있는 시절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문자수를 봤다. 대학시절 지인 중에는 하루 방문자가 300명을 훌쩍 넘기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늘 걸까,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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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셀카를 찍었던 때이기도 하다. 가장 업데이트가 잦았던 사진 폴더는 'it's me'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름이다. 셀카를 찍으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써클렌즈를 낀 나의 얼굴이 있다. 아 맞다 내가 써클렌즈를 꼈었지. 대학시절 내내 써클렌즈를 끼기 시작해서 회사 다닐 때까지도 꼈었는데. 써클렌즈를 뺀 맨눈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서 라식 수술을 망설인 적도 있었다. 지금은 써클렌즈를 낀 내 얼굴이 낯설다. 무척 인위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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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나는 사내방송에 자주 출연했는데 내가 보기에 영상 속의 나는 셀카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말할 때 입도 삐뚤고, 살이 많아 퉁퉁한 눈두덩이 덕에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나.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나오는 것을 재밌어하고 웃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셀카 속의 나처럼 예쁜 모습으로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더 웃기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망가지는 연기도 점점 스스럼 없어졌다. 사내 괴담 편 촬영 때는 엘리베이터에서 네발로 기어서 나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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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쓸 때는 어지간하면 태그를 뺀다. 미니홈피 방문자수 집착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니 언제 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브런치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글을 못 쓴 적도 있었다. 누가 내 글을 많이 볼까 봐서, 그게 두려워서. 관종으로 태어났는데 죽을 때는 관종이 아닌 사람으로 죽을 건가보다. 언젠가부터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책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관종의 역사는 이제 거의 종결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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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친구들이 방명록에 긴긴 글을 남겨주곤 했었다. 이제는 친구들의 그런 메시지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의 마음속일까. 관종도 사라졌고 관심의 표현들도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나 이제 관종 아니라서 조금만 줘도 충분한데. 나부터라도 누군가에게 관심의 표현을 해볼까,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