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day-32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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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업계 용어를 하나도 몰랐다. 웹이나 시스템에 관련된 일반적인 용어도 몰랐고, 광고 용어도 몰랐다. 심지어 대행사 이름들도 다 줄여서 부르는 바람에 회의 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선배는 궁금한 것을 시간을 잡아놓고 물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조용히 모르는 것을 열심히 적었다가 하루의 끝에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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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그 시절엔 참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궁금해도 방해될까 봐 함부로 묻지 않았다. 어지간한 건 선임들이 다 시도해 봤겠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갑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었던 2년의 회사 생활을 보냈다.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물어보라고 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즉각 즉각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하루에 14시간을 일한 두 해를 보냈다. 나는 이제 나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갈증을 느낀다.


3

명백히 잘못된 정보를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왜냐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그의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방금까지 확신에 가득 차서 한 말을 내가 사실로 무력화할 때 그 사람일 느낄 당혹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혹감이 나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결국 나의 서바이벌을 위해서 내가 참은 것이지만, 기분이 몹시 나빴다. 이 글을 쓸 때까지 모든 분노가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알겠다. 나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더 화가 난다.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했다면 적절한 대답을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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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오늘 저녁에는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만났다. 회사에서도 잠깐 일해봤지만 거기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음악을 한다. 랩을 쓰고 콘셉트를 정하고 뮤비를 만든다. 집에 와서 그의 랩과 영상들을 봤다.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있었다. 랩은 '인식'을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꽤 어려운 개념이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영상에서도 여러 가지 메타포를 썼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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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나의 올해의 목표는 단편소설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작년 목표도 단편소설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아마 재작년에도 그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3년간, 나는 단 한 문장도 적지 못했다. 언젠가 나를 찾아올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다. 하지만 아무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것이 없는지를 되감으며,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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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그걸 좀 더 열심히 궁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치열하게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쓰고, 또 영상으로 만들어 낼 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긴 파마머리에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입은 그가 말했다. 전 돈 별로 필요 없어요. 이 옷도 오천 원 짜리거든요. 팔찌들도 길에서 천 원, 이천 원 하는 것들을 사서 조합한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좋아요. 지금 차도 엄마가 좋은 것을 물려줬지만, 그게 티코였어도 저는 상관없어요. 나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면 되는 거죠. 그 말을 할 때 그가 반짝반짝했다. 예술계가 고민한 만큼의 결과를 돌려주는 함수로 된 세계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고민이 가치 있는 결과로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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