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day-33

by Lucie

1

고등학교 삼 학년 때 우리 학년은 열아홉 반이었다. 우리 학년만 칠백 명 정도였고, 전교생이 이천 명 정도 되었다. 그런데 식당은 한 개였다. 식당은 강당이 있는 건물에 있었다. 고삼은 대개 소음 때문에 가장 높은 층에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 가려면 4층 건물을 내려와서 옆 건물 2층에 올라가야 했다. 이천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기 때문에 점심엔 줄이 길게 늘어졌다. 조금만 늦어도 삽시간에 불어나는 줄 때문에 빨리 식당에 도착하려는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2

나는 대단한 먹보였다. 그리고 성격도 급해서 점심시간이면 어떻게든 식당에 빨리 가기 위해서 애썼다. 사 교시 종이 치기 10분 전에 수저통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5분 전부터 시계만 보는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3분 전에는 의자를 미리 빼놓는다. 1분 전에는 출발 신호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선생님은 이미 학생들의 관심이 점심밥에 가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종 치기 직전에 끝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주는 즉시, 혹은 종이 치는 그 즉시, 나는 전력으로 식당을 향해 달렸다.


3

전교생 중에 1등으로 밥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나의 뜀박질은 엄청났다. 당연히 계단은 두 칸씩 내려가는데, 간혹 세 칸씩 내려갈 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이 네 칸 일 때는 한 번에 바닥으로 뛰어 착지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건너뛰기로 계단을 내려갈 때면 밥 먹으러 가다가 넘어져서 죽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다행히 발목 한 번 삐끗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했다. 친구들이 너는 밥 받을 때 애교가 작렬이라고 비웃었다. 신기한 게 조금만 더 주세요, 라는 말은 담백하게 나오지가 않는다. 양쪽 코에 솜이 가득한 목소리로 더 달라고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4

그렇게 밥을 잔뜩 받아다가 빨리 먹었다. 친구들은 나의 빨리 먹기 비결은 양손 수저질이라고 말했다. 오른손에는 젓가락, 왼손엔 숟가락을 들고 양손으로 밥을 먹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양손으로 밥을 먹을 수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숟가락 들었다가 놓고 다시 젓가락 들고, 다시 바꿔 들고, 이렇게 먹는 거 너무 귀찮지 않냐고 되물었다.


5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먹었는데 살은 찌지 않았다.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내가 살이 찌지 않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리고 공통된 의견을 냈다. 쟤는 말이 많아서 칼로리를 말하는데 다 쓴다고. 그게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무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 없이 먹었다. 하지만 장애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극심한 소화불량을 겪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소화기능을 상실한다. 몇 년 전에는 점심 한 끼만 먹어도 하루 종일 배가 불러서 밥을 먹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6

함께 일하는 동료는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를 열심히 궁리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오늘은 뭘 먹지, 혼잣말을 하며 열심히 메뉴를 탐색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한다. 루시는 먹는 데 관심이 없어서 뭘 먹든 상관 없겠지만 저한테는 중요하거든요. 종이 치면 수저통을 주머니에 꽂고 식당을 향해 돌진하던 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극심한 소화불량은 식탐을 삭제해 버렸다. 지금의 점심시간은 나에게 먹는 시간이기보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다. 바깥바람을 쐬고 햇볕을 받는 시간.


매거진의 이전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