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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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학원 친구들은 나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내신 성적을 위해서 영어 교과서 본문을 외우게 했다. 본문을 빨리 외우면 빨리 집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영어 책 본문을 금방 외웠다. 빨리 외운다고 괴물이라고 불렀다. 시험 범위는 영어책 서너 단원이었다. 즉 본문을 세 개나 네 개만 외우면 시험 준비는 끝난다. 문법은 외운데서 꺼내면 되었고, 빈칸은 외운 대로 채우면 되었다. 영어 점수는 항상 좋았다.
2
하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수능시험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본 적이 없는 문장이 나왔다. 사전에 암기되지 않은 내용을 읽고 이해해야 했다. 비로소 내가 영어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영어 교과서 본문은 해석을 남이 해줬다. 그럼 그걸 듣고 그 문장에 입혀서 이해한 것이다. 단어의 뜻을 다 아는데도 문장이 되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3
수능시험은 EBS 문제집에서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EBS 문제집 일곱 권을 풀었다. 거기 나오는 모르는 단어를 적어서 외웠다. 그냥 마음의 위안이 되었을 뿐이다. 영어는 늘 재미가 없었다. 일곱 권을 풀었는데 첫 번째 문제집부터 일곱 번째 문제집까지 문제 틀리는 수준은 비슷했다. 오답노트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지긋지긋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결국 그냥 시간만 썼다. 공부는 거의 안됐다.
4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영어가 걸림돌이었다. 원어 수업은 최대한 피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원어 수업은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한 번은 내가 해석한 내용을 보고 친구가 박장대소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이걸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냐며 친구는 감탄했다. 토익점수도 700점에 머물렀다. 이게 무슨 점수인가. 토익 시험 볼 때 교복 입은 학생들이 들어와서 초단시간에 풀고 노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5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모으고 모자란 돈을 친오빠에게 빌려서 호주로 떠났다. 영어 못하는 애들끼리 집단으로 공부하는 일은 즐거웠다. 영어를 못해도 말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 이후 영어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멘붕도 종종 있었다. 주문전화를 받아서 주소를 적어야 할 때가 제일 난관이었다. 극한의 받아쓰기 시험도 익숙해질 때쯤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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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토익 시험을 쳤는데 정말 웃기는 결과가 나왔다. 리스닝은 만점, 리딩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호주 가서도 읽고 쓰기는 안 하고 말하고 듣기만 한 결과였다. 지금도 회사에서 영어로 된 문서를 읽어야 할 때 아주 고역이다. 소리 내서 읽지 않으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난독증에 걸린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해석하는 것보다 번역기가 더 훌륭하게 의미를 이해해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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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갈 때면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문이라는 걸 여행 다니면서 알았다. 회사 동료들은 영어 배우는 속도보다 번역기가 발전하는 속도가 훨씬 빠를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무의미한 욕심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를 더 자유롭게 쓰고 싶다. 그런데 너무 고통스럽게 배우고 싶지는 않아서, 해외에 나가서 좀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어를 배워나가고 싶다. 50대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아줌마로 살 것이다. 블로그도 영어로 써보고 싶다. 꿈이 있으니 언젠가 이루겠지,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