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9
1
잡채에 계란 지단 부쳐서 넣을 거지? 내가 검색해 본 잡채 레시피가 열 개는 되는 것 같은데, 거기에 지단을 넣은 잡채는 없었다. 심지어 집에 있는 백선생님 레시피에도 계란 지단은 없었는데. 그래도 지단을 넣으면 음식이 정갈해 보이겠다 싶어서 그러마 했다. 엄마는 영 자신 없으면 시댁 가기 전 아침에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건 뭐 선생님이 내 준 숙제 엄마가 대신해주는 느낌이네. 덕소 왔다 갔다 할 시간이면 그냥 그 시간에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덧붙였다. 안 밀려서 엄청 금방 올 거야.
2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소리에 엄마는 작게 탄식했다. 아이고, 밥 먹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시키지 말고 네가 좀 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엄마 나도 밥 먹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거든! 엄마랑 수다를 늘어놓는 동안 남편은 설거지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3
엄마의 하소연은 오빠 이야기로 이어졌다. 엄마가 연결해준 소개 자리 몇 개가 있는데 오빠가 반응이 미적지근한 모양이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던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는 오빠가 약사와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며느리 직업이 있었는지 몰랐다. 게다가 그 바람이 오빠가 원하는 방향과는 퍽 달라서 바로 웃음이 나왔다. 웃으면서 엄마한테 뭐라고 했다. 엄마 그게 뭐야, 오빠가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며느리 직업까지 바라는 거야? 그러지 마. 그러자 엄마의 억울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 내 자식인데 바라지도 못하냐? 그 질문을 듣고 보니, 자식 낳아 키웠는데 바람 정도는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강요하진 않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한 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4
내가 고집불통인 탓에 엄마는 꽤 수용적이다.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은 바람이 있는 나에게 엄마는 늘 한국이 좋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도 한국이 좋다는 엄마에게 봄마다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나라가 뭐가 좋냐고 되물었다. 엄마는 한국처럼 병원 가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거 누리려다가 폐병 걸려 죽겠다고 빈정거렸다. 엄마는 그래 그건 좀 그래, 하며 동조해 주었다.
5
결혼할 때도 엄마의 불만사항을 듣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두 번 정도 조용히 듣다가 세 번째에는 밥 먹다 울면서 듣기 싫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엄마들도 많다고 했다. 스트레스받는다는 호소 한 번에 제깍 태도를 바꿔준 엄마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6
시댁에는 잡채도 해가고 이것저것 챙기는데 친정에는 남은 잡채를 가져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도 좀 더 살뜰히 챙기도록 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사가지고 가서 이쁜 짓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