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볼 수 있는 속도

day-40

by Lucie

1

여섯 살 때 살았던 집은 단독주택의 2층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마침 나는 내 몸만한 인형을 갖게 된 참이었다. 그 인형이 너무 좋아서 어딜 가나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그날도 몸만한 인형을 들쳐 메고 집으로 올라가고 있는 길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를 봤다. 갑자기 엄마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집안에 있던 오빠에게 수건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엄마는 오빠가 준 수건을 받아서 내 머리에 댔다. 그리고 나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2

병원에서 내 이마를 살펴본 의사는 상처를 꿰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이마를 꿰맸고 한 동안 이마에 흰 거즈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나이 먹고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그때 문밖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내가 계단에 머리를 세게 받은 것이다. 인형과 함께 이동하는 일이 버거웠던 나는 아무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이미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놀란 엄마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것이다.


3

열 세 살 때는 체하는 일이 잦았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도 며칠간 낫지 않아서 자주 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소아과가 문 여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응급실을 찾게 되었는데, 원인이 맹장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날 맹장 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른이 되어서 배꼽티를 입을 수 있게 예쁘게 수술해 주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서른이 넘도록 배꼽이 보이는 티셔츠를 입을 일은 없었다.


4

이런 일들은 살면서 계속 반복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반나절은 기침을 해야 감기인 것을 알았다. 내가 아픈 것을 나보다 옆자리 동료나 가족이 더 먼저 알아차릴 때가 많았다. 지하철에서 여러 번 쓰러지고도 폐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내과를 찾아갔던 것도 나의 미련한 부분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공황장애 걸린 이유가 뭔지 몰라 억울했는데, 이제는 잘 안다.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5

연휴 첫날에는 남편과 집 앞에 나가서 자전거를 탔다. 가을 햇볕을 쬐며 처음 가보는 길을 가봤다. 차로 다니던 바로 옆길이었는데 거기에는 공원이 있었다. 평소 법원의 뒤 뜰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공원 안을 자전거로 달려봤다. 공원 안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바로 옆인데도 가까이 와보지 않으면 전혀 몰랐을 일이었다. 남편은 농구를 좋아하는데 집 근처에 농구대가 설치된 공원이 두 개나 있었다. 어떤 속도는 세상의 많은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자전거의 속도로 동네를 거닐 수 있어서 참 좋은 날이었다. 연휴 중에는 꼭 조깅도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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