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행동

day-44

by Lucie

1

정치계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내 사람으로 요직을 채우는 것. 나에게 쓸모 없어진 사람을 버리고 내 말을 잘 듣는 새로운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 꽂는 것.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최근 2주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열심히 알려주었다. 영화 <공범자들>은 지난 정권에 협력한 언론계 인사들의 실명을 끈질기게 기록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일이 정치계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국익을 위해 행사하는 곳. 주주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주주의 이익실현을 위해서 사용하는 곳. 이 두 곳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남용 사례가 비슷하다는 점이 신기했다. 하지만 원숭이의 예가 떠올라서 바로 신기함이 사라졌다.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은 자기와 친한 수컷에게만 짝짓기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것은 그냥 동물의 세계에 있는 일반 법칙이었구나.


2

나는 자주 내가 동물이고 동물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상기한다. <킹스맨>을 보면 고도로 훈련받은 요원도 폭력성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자극하면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인다. 다니엘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보면 인간은 대개의 경우 직관을 사용해서 사고한다. 이는 수많은 오류를 발생시킨다. 숙련된 투자가도 랜덤 투자보다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리지 못한다고 노벨상을 받은 학자는 주장한다. 인간은 대개의 동물과 약간 다른 특성을 지닌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3

영화 <Life of Pi>의 주인공인 파이는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원의 호랑이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가까이 갔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난다. 그는 호랑이의 눈을 보면 영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거기에 아버지는 차갑게 대답한다. 그 눈에서 본 건 네 감정일 뿐이다. 그 대사를 듣는데 탄식이 나왔다. 나는 뭔가를 내 감정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 감정인 것을 봤다고 믿고,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4

<Life of Pi>에서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맥락으로 등장한다. 파이는 알라에게 절을 한 뒤 밥 먹기 전 식탁에서 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힌두의 신도 믿는다. 세 가지 신을 동시에 믿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성을 믿어보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그렇게 신을 믿었으나 파이는 구명보트에 간신히 매달려 가던 중 절망적인 폭풍우를 만난다. 파도가 내리 꽂히고 배에서 나가떨어졌다가 매달렸다가 하는 와중에 그는 절망해서 신에게 소리친다. 가족이 다 죽었다고, 나에게 도대체 뭘 더 바라냐고.


5

마지막에 살아서 병원에 있는 파이에게 일본 선박회사 사람들이 찾아온다. 자초지종을 묻는 사람들에게 호랑이와 얼룩말, 하이에나와 오랑우탄을 태우고 바다를 표류한 이야기는 황당할 뿐이다.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에게 그는 동물이 사람으로 바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준다. 사람들은 파이를 이해하고 돌아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준 뒤 파이는 묻는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세요? 어떤 이야기일지는 당신의 믿음에 달렸어요.


6

사실은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벽이 있다. 사실이 벽을 뚫고 나에게 닿았을 때 그 진실은 얼마간 멀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믿음을 발휘할 것인가. 발휘되는 믿음은 나의 본능과 닿아있다. 동물로써 어떤 본성을 발휘해야 할지 나는 결정해야 하는 것 같다. 아니 사실 본성은 결정되어 있다. 얼마나 표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거겠지.

매거진의 이전글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