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5
1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으니, 촌년이라면 촌년이었다. 고작 베이징으로 가는 여행길이었지만 얼마나 설렜던지. 비행기에서 들을 노래까지 특별히 준비했다. 그리고 그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언제 또 탈 수 있을지 모를 비행기였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 이 노래를 다시 들을 때 이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겠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이 설레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준비한 노래였다.
2
의외로 나는 이듬해 학교를 휴학하고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1년간. 그건 여행이 아니었다. 설렘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을 갖고 떠난 길이었다.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거기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마침 내가 호주에 있던 때에 오빠의 졸업식이 있었다. 오빠는 프랑스에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오빠는 졸업식에 엄마를 초대하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혼자서 오빠 학교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빠는 나에게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쾌척했다.
3
호주에서 로마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한국을 경유했다. 남반구의 섬이란 정말 외딴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로마와 바티칸을 구경했다. 몇 개월 전 발목을 수술한 엄마는 많이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를 파리의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시내에 나와서 혼자 더 구경을 했다. 오르셰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는 문 닫기 30분 전이었다. 1층의 그림들을 얼른 보았다. 15분이 남았을 때 얼른 2층에 올라가서 그림을 보고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경비가 폐장 직전이라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2층에 보고 싶은 그림이 여러 개 있었다. 빨리 보고 내려오면 안 될까요? 경비는 고개를 저었다. 맥 빠진 걸음으로 오르셰를 빠져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 지는 파리 어드메에서 엉엉 울었다. 파리까지 와서 코 앞에서 그림을 못 보고 발길을 돌린 것이 너무 아쉬워서.
3
엄마는 쿨했다. 울긴 왜 울었냐며,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엄마랑 같이 가서 그림을 봤다. 그날이 파리를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파리의 마지막 일정으로 엄마와 함께 본 그림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테제베를 타고 오빠 학교로 향했다.
4
오빠가 있는 기숙자는 허물기 직전의 외국인 기숙사였다. 하필 졸업하기 직전에 허름한 건물로 옮기게 되었다고 오빠는 아쉬워했다. 그 건물에 황인종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다른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었다. 졸업식은 저녁에 시작되었다. 군사학교였기 때문에 낮에는 유명 전투를 재연한 연극들을 했다. 무슨 전투 인지도 모르겠고 프랑스어를 전혀 몰라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열심히 구경을 했다. 해가 지자 운동장에 핀 조명이 켜지고 백마를 탄 장군이 등장했다. 무리를 지은 졸업생들은 군가를 불렀는데 무려 화음이 넣어진 노래였다. 아, 이것이 프랑스의 미인가.
5
졸업식이 끝나고 자정이 가까운 무렵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무도회라니! 상상도 못 하였던 전개 때문에 오빠에게 잠깐 따졌다. 이런 이벤트가 있는 줄 알려줬다면 내가 입을 옷을 준비를 했을 텐데. 나는 레깅스에 짧은 치마를 입은 상태였다. 다른 졸업생들의 여자 친구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연상케 하는 드레스들을 입고 등장했다. 심지어는 무도회에서 추는 춤도 있었다. 오빠의 동급생이 나에게 무도회 춤을 알려주어서 함께 춤울 췄다. 갑자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면무도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났다. 그런 춤이었다. 나는 한 번도 춰본 적이 없는 서양 무도회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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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오빠랑 셋이 하는 여행은 무척 재밌었다. 프랑스 말을 유창하게 하는 동양인 관광객에게 모든 관리인들은 친절했다. 어느 명소를 가든 오빠는 깨알 같은 팁들을 얻어왔다. 엄마는 관광지에서 영어를 하는 딸과 프랑스어를 하는 아들이 그저 대견할 뿐이었다. 엄마는 이후로 내가 혼자서 해외여행 가는 것을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7
오르셰 미술관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던 게 무색하게 나는 작년에 파리에 다시 갔다. 이제는 내가 다음 여행을 어디로 떠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긴 연휴 동안 다음번엔 어디로 여행을 갈까 지도를 펴놓고 궁리를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그건 내년 봄쯤이 되어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냈다. 빈의 신년음악회 티켓이 로또 당첨급의 추첨으로만 살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음악회의 티켓팅 결과에 따라서 우리의 여행시기와 장소가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도 여전히 종 잡을 수 없다.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것이라는 점만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