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6
1
나는 이방을 2005년부터 썼다. 십년이 넘게 내 방이었다. 결혼한지 육 개월만에 방은 낯설게 변했다. 내 옷장에는 잘 들지 않는 가방과 거의 안 입는 옷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이불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옷장 옆 선반에는 젤 네일이 죄다 나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쟤네들은 박스안에 있었는데 왜 나와있는거지. 나는 모른다.
2
매일 머리 빗는데 썼던 빗들도 몇 개월 안 썼더니 쓰기가 꺼림칙하다. 절반쯤 남은 스킨도 마찬가지다. 친정 집에 올 때마다 기초화장품을 다 들고 올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 남겨둔 화장품은 골동품이 되었다. 이젠 쓸 수 없는 먼 나라의 물건 같다. 크고 작은 병들이 세워진 화장대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모두 쓰레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먼지탄다고 저걸 다 쓰레기 봉투에 넣고 가버리면 분명 엄마가 섭섭해하겠지. 얼마간은 좀 더 전시해 두기로 하자.
3
집에 올 때마다 나를 유혹하는 것은 내 책이다. 김영하 소설, 김연수 소설,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줄 맞춰 꽂혀있다. 다시 읽지도 않을 거면서 볼 때마다 갖고 가고 싶다. 읽은 책을 꽂아두고 이고지고 사는 것이 시각적 허영심인 줄 안다. 가방은 꼭 책이 들어가는 사이즈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깨가 아파서 이북 리더기를 구입한 처지다. 그리고 리더기로 읽을 첫 책으로 호모데우스를 사고선 아직 절반도 못 읽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시 욕망이 진정된다. 집에 잘 있는 책은 집에 잘 두자. 잘 있어 내 책들.
4
친정집 올 때마다 텔레비전이 작아서 갑갑하다. 내 집은 친정보다 좁고 텔레비전은 더 크다. 상대적으로 커다란 친정집 거실에서 멀리있는 작은 네모를 들여다보면 시력 테스트를 당하는 것 같다. 친정집 올 때마다 텔레비전 새걸로 사드리고 싶은데 길어야 하룻밤 자고 가기 때문에 금방 잊어버린다. 냉큼 사기에 텔레비전은 너무 비싸다. 그냥 휴대폰이나 새걸로 바꿔드려야지.
5
집에 올 때마다 먹는 엄마밥이 너무너무너무 좋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적어도 두 종류 이상의 김치와 세 종 이상의 밑반찬, 메인으로 고기와 생선이 나온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도 늘 함께다. 엄마가 차린 밥상은 재료가 좋다. 오늘도 브로콜리를 고추장에 찍어먹고 깜짝 놀랐다. 별로 맵지 않고 감칠맛이 났다. 엄마는 순창의 유명한 고추장이라고 강조했다. 좋아하는 가지 반찬도 두 가지 방식으로 요리되어 나왔다. 내가 차렸다면 이박삼일이 걸리고도 이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손 맛이 그리울텐데 나도 나중에 엄마맛이 나는 요리를 할 수 있었으면.
6
엄마가 만든 대추차를 먹었다. 엄마는 직접 말린 대추 고명과 잣을 올려주었다. 맛있다는 말에 큰 통을 가져와서 끓이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 엄마가 진짜 킹왕짱이다. 근데 나는 먹지말고 김서방만 끓여주라고... 무튼 귓등으로 듣고 잣이랑 대추고명까지 야무지게 엄마가 챙겨주는 걸 보며 이번 겨울은 이 차와 함께다, 하고 기쁜 눈을 빛냈다. 엄마는 꿀도 가져가라고 했다. 사면 된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나에게 엄마는 쐐기를 박았다. 겨울에는 집에 꿀이 있어야 해. 아 그렇구나... 머리털 나고 처음 알았다. 겨울에는 누구나 곰돌이 푸가 되는 건가. 무튼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7
고스톱을 쳐본 적 없다는 남편이랑 친정와서 한 판 하려고 했는데, 축구가 시작되었다. 일기 쓰고 있는데 거실에서 울오빠가 남편을 붙잡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나이드니까 오빠도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거참 시끄럽네. 가서 방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