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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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의 하이에나'라는 추석 특집 프로그램을 봤다. 사람들이 음악적 영감을 받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팬타곤의 후이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한 사진을 펼쳐 멤버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곡의 래퍼가 꼭 이런 표정으로 랩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들으니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멜로디와 가사를 완성하는 일이 아닌 거다. 거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고, 래퍼의 표정을 찾고, 그 둘의 무대 동선을 완성하는 것까지. 그 모든 일이 한 곡의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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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은 '너를 찾아서'라는 곡을 들고 나왔다. 최근 음원차트를 휩쓴 '좋니'에 이어서 찌질한 가사 전문가로 등극하는 느낌이다. 잘 차려입은 그럴듯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감정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감정 벌거숭이라고 해야 하나. '좋니'에는 네가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버겁다는 가사가 나온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내 십 분의 일만큼만 아프다가 행복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정말 멋없지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너를 찾아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봤자 뭐가 달라지냐며 헤어진 연인을 무작정 찾아간다. 가는 이유를 합리화시키는 말은 이것이다. 원래 나 이기적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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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벌거벗은 감성은 단촐한 피아노 반주, 그리고 기교 없는 윤종신의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너를 찾아서'는 고음부가 노래의 대부분이다. 윤종신은 그다지 뛰어난 보컬은 아니다. 그는 눈을 감고 어금니까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려 노래한다. 그 모습이 이별의 아픔에 헤어진 연인을 찾아 나서는 남자의 절규 같다. 감정과 노래가 잘 버무려진 곡이다. 그 방송을 보면서 윤종신의 모습에 새삼 반했다. 고음 가수 윤종신의 새로운 가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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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벌거숭이라는 말을 쓰다 보니 페북에서 본 영상 하나가 생각났다. 네덜란드 공영방송에 대한 영상 클립이다. 거기에는 홀라당 옷을 벗은 남자 세명이 나온다. 남자 셋은 얼굴을 가렸다. 가린 부위가 성기가 아니라 얼굴이라는 점이 웃겼다. 그리고 마이크를 든 남자가 자신의 고민을 말한다. 저는 배가 많이 나왔고요, 성기가 작아서 고민이에요. 그 이야기를 전문가가 받아서 상담을 해준다. 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활 상담 라디오 같은 느낌이 났다. 네덜란드 공영방송에서는 마약을 마신 MC가 코를 쥐고 괴로워하는 마약 소개 프로그램도 해주고, MC가 직접 사창가에서 원나잇을 해보는 프로그램도 해준다. 정치풍자도 수준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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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언론 자유는 세계 1등이라고 한다. 마약 복용률과 성범죄율은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국가보다도 현저히 낮다. 감추고 금기 시 하는 것이 전부 미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종신의 가사도 그렇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너 행복하게 지내는 거 힘들다. 난 이기적이니까 헤어졌지만 너 보러 찾아갈 거야. 멀리서 바라볼 거야.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가사라니. 노래가 끝나고 윤종신은 멀리서 헤어진 연인 바라보는 거 사실 스토커야,라고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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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감성, 벌거벗은 몸, 원나잇을 하고 싶은 호기심, 마약을 통해서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 모두 엄청 특별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봤을 생각, 혹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방식의 드러냄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네덜란드 프로그램의 관람등급은 12세라고 한다. 사람이 갖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껴보게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