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가 아니면 보지말고

day-53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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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정재승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이경전님의 친구신청을 거절하며,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글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그런 류의 사람과 가까이할 생각이 없습니다." 글의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적힌다. "친구신청을 하셨기에, 그러면 앞으로 제가 이경전님의 글을 계속 읽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게는 큰 고통이기에, 이렇게 거절하며 그 이유를 페이스북에 답니다."


2

읽다가 갑자기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보지 않고 듣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때에는 저런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행동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 이유로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선언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이렇게 저명한 사람이 역시나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사람에게 공개된 곳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


3

더불어 이경전이라는 사람은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학자가 방송 출연을 해서는 안 되며, 하더라도 본인처럼 게스트로는 괜찮지만 고정은 안 된다'는 그의 주장. 얼핏 들으면 이 문장 자체도 꽤 '예'스럽게 들린다. 학자의 도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사람은 학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보단 학자가 보여야 할 모습에 치우친 것이 아니었을까. 학문을 멀리하고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지, 방송 출연 자체를 경계할 것은 아닐 것이다.


4

최근 이국종 외과의사가 나왔던 방송이 떠올랐다. 이국종 의사는 총에 맞은 석선장을 수술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방송 출연을 꺼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 동안에는 환자를 수술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출연을 결심한 이유 또한 말했다. 일반적으로 외과는 선호되는 분야가 아니고, 게다가 중증의 외상환자를 수술하는 일은 더욱 기피하기 때문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것이었다. 몇 명을 먼저 수술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5

언젠가 자기가 쉽게 돈 번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놓던 사람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무지한 탓에 자신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 쉽게 돈을 벌었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것이 자랑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기꾼임을 자랑하는 것과 같았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는데 이걸 아직도 자랑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금도 비슷한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잡을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가까이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어서 정재승 교수처럼 정면에서 승부하지 못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면박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순수히 예가 아닌 것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차원의 접근에서, 단호함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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