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음

day-56

by Lucie

1

최초의 기억은 거의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기억들이다. 엄마의 증언과 어린 시절 사진들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오빠가 하는 행동을 다 따라 했다. 그리고 오빠가 배우는 활동도 똑같이 따라서 하고자 했었다. 오빠는 여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나는 네 살이었을 것이다. 늘 오빠의 바이올린을 탐냈다. 얇은 나무통에 매인 가느다란 네 줄. 섬세한 조율을 해야 음이 맞는 그 물건을 네 살의 거친 근육으로 건드리곤 했다. 엄마는 나에게 가짜 바이올린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바이올린처럼 생긴 그 물건 안에는 쌀인지 팥인지 하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활은 없었지만 나는 그걸 흔들어서 소리를 냈다.


2

열 살 때 드디어 나도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다. 내 바이올린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케이스에 매직으로 한 획, 한 획 정성 들여 이름을 썼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배우는 일은 고되었다. 어느 정도 켤 수 있게 되자 선생님은 나에게 악보에 쓰인 기호를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디크레센도가 나오면 점점 작게, 스타카토가 나오면 활을 짧게 끊어서 쓰게 했다. 플랫이 달린 줄과 샵이 달린 줄에 걸린 음표가 나오면 손가락을 주의해서 짚어야만 맞는 음이 나왔다. 선생님은 정확한 음정을 요구했다. 바이올린은 어느덧 너무나 피곤한 일로 변했다.


3

연습을 하려고 하다가도 엄마가 바이올린 연습해야지,라고 이야기를 하면 하기 싫어져 버렸다. 나는 연습을 해오지 않아서 늘 선생님에게 채근을 당했다. 잠깐 외도로 다녔던 피아노 학원도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멘붕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수영을 배울 때도 키판을 놓자마자 흥미를 잃어버렸다. 제일 못하는 사람이 모인 레인에서 선생님에게 개인지도 받다시피 하다 그만두었다. 눈높이 수학은 항상 밀렸다.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 다가오면 답안지를 찾아 온 집안을 뒤졌다. 결국 그만두었다.


4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가 매일 너무 재밌었다. 수업 시간이면 몰라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이 앞뒤로 널렸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노느라 잠이 올 틈이 없었다. 하지만 고3 때는 하루 종일 자는 나를 보다 못해 친구들이 쿠션을 뺏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방석을 빼서 반으로 접은 뒤 다시 그걸 베고 잤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교실 뒤에 가서 쌓여있는 대학 홍보 자료를 봤다. 그 자료들을 다 읽어제낀 뒤에 친구들의 진학 상담을 해줬다. 내신 성적, 모의고사 성적, 수상 경력이나 임원 활동 등을 검토하고 적절한 전형들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내 앞가림 못하면서 남의 앞가림해주기,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다.


5

늘 주 활동보다는 곁다리 활동에 강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자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찮게 유학을 필수로 공부시키는 학교에 들어가서 그랬을까. 학생이 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하면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변명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동아리를 다섯 개 하고 있을 때였다. 공부를 잘 안 하니까 일단 주말에는 무조건 도서관에 가자. 가서 앉아 있으면 조금이라도 책을 보겠지.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학교에 주말마다 갔다. 저녁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저녁 무렵엔 친구들을 만나 놀았다. 1학년 때 그냥저냥이던 학점이 단번에 올랐다. 그 뒤로는 졸업할 때까지 학점이 좋았다.


6

끈기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 일간 매일 쓰겠다고 생각하자 오늘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잘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요즘에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하기 싫음과 싸우고 있다. 다들 나한테 회사 다니지 말라고 하거나, 돈 벌지 말고 제발 좀 놀라고 하면 달려가듯 나와서 일했을 지도 모른다. 그냥 다들 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삐딱한 마음에 싫다고 돌아선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하고 싶은 일을 거머쥐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뭘 위해서 일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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