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9
1
어제 일기 제목에 '빙봉'을 언급했더니 분홍색 빙봉을 다시 보고 싶어 졌다. 남편이 인사이드 아웃을 보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했다. 저녁을 먹고 빨래를 돌려놓은 뒤 영화를 켰다. 아이가 눈을 떴다. 까만 어둠 속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기쁨이의 형태가 되었다. 기쁨이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기쁨이가 홀로 기뻐한 시간은 33초였다. 33초 후에 옆에 슬픔이가 나타났다. 문득 관상 선생님인 기슬이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은하야, 감정은 그냥 거기에 있는 거야. 왜 그런 감정을 느끼냐고 물어보는 일은 의미 없어. 그냥 있는 거니까.
2
빙봉이 나오는 장면은 예상보다 더 슬펐다. 빙봉과 기쁨이는 기억의 쓰레기장에 떨어진다. 거기에 떨어진 기억들은 사라진다. 거기에서 빙봉이는 자신을 희생해서 기쁨이를 쓰레기장에서 내보낸다. 빙봉이 곧 자신을 희생할 거라는 걸 알고 영화를 보니까 가장 슬픈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통곡이 나와버렸다. 너무 대성통곡을 했더니 놀란 남편이 휴지를 계속 뽑아주었다. 진정하고 나서 옆을 보니 남편도 눈이 그렁그렁하다.
3
남편은 정말정말 슬픈 것이 나와도 운 적이 없다. 울면서 슬프지 않냐고 물어보면, 슬픈데 눈물은 나오지 않아요, 하면서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런 남편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다니. 정확히는 내가 너무 울어서 그렇게 된 거지만 의외의 타이밍에 남편의 우는 얼굴을 관찰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4
빙봉이 죽는 것도 아니고 잊혀지는 것이 그렇게 슬프다니. 잊혀지는 것이 뭐 별거라고 이렇게 슬프지. 애당초 상상 속의 친구 아니였던가. 울면 사탕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빙봉이. 사탕 눈물을 흘리면서 캐러멜 맛 사탕이 맛있다고 추천하는 귀여운 친구. 그게 잊힌다고 나이 서른 먹고 영화 보면서 엉엉 울다니. 내 안에 살고 있는 슬픔이는 나이를 안 먹나 보다. 그리고 한편으로 잊혀지는 것이 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5
존재의 소멸이란 그런 식의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물리적 존재가 소멸하는 것. 그리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의미가 소멸하는 것. 옛날 어른들은 아들을 못 낳아 제사 지내 줄 후손이 끊기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어지는 걸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선대와 내 이름이 적힌 족보를 간직해 줄 사람을 남기는 것. 그리고 제사를 통해서 그가 자신을 매년 한 번은 기억해주는 것. 그걸 간절히 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6
그리고 실존하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존재가 생긴다는 것도 신기했다.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라일리와 빙봉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같이 놀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그런 상상 속의 친구가 있었을까. 기억은 없다. 애당초 없었던 건지 이미 망각의 바다를 건너서 사라진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빙봉의 잊혀짐에 목놓아 울게 되는 걸 보면 나에게도 그런 절친한 상상 속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친구를 잃은 상실감은 남아서 그 감정이 나를 울리는 걸지도 모른다.
7
기슬이의 마지막 관상 수업은 거의 일 년 전이다. 그때 기술은 심술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심술을 보는 법을 알려줬는데, 나에게 심술의 정의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잘 살면 아프고 괴로운 것. 그것이 바로 심술이라는 기슬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큰 비효율을 감수한다는 거야? 자기가 잘 먹고 잘 살면 그걸로 충분한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이 잘 사는지 아닌지를 보고서, 잘 살면 아프고 힘들어한다고? 그런 생각은 왜 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나에게 기슬이 해준 말은 감정은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니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감정의 길을 만든 기억들이 있는 거겠지.
8
나의 감정들이 흐르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내가 싫어하는 것,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들. 모두 내가 처음 겪은 싫음과 분노에 관련된 일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감정이 흘러가는 길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번 주에 일어난 일들이 다 멀리 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 주말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