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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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하다가 종점이 금촌인 버스를 봤거든. 요즘 같이 편집하는 후배들이 92년생쯤 되는데, 우리는 금촌이라고 하면 '금촌댁네 사람들' 생각나지 않아? 근데 그 친구들은 그걸 모르더라고.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들은 금촌댁네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그거 이영자 나오던 주말 프로그램! 그거 시청률 40% 대였는데, 모르는구나. 누군가 최근 만난 여자분 나이가 92년 생이었는데 아이유가 부른 '사랑이 지나가면'이 원곡인 줄 안다고 이야기했다. 이문세 노래인걸 아예 모르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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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H.O.T를 이야기해도 각주를 달아야 한다니까요. 내가 말을 받았다. 나는 최근에도 갑자기 애쵸티 생각이 나서 전사의 후예와 아이야를 들었다. 아이야는 그즈음 일어났던 씨랜드 화재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노래였다. 씨랜드 청소년 수련관 화재로 유치원생 19명이 죽었다. 사회적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H.O.T의 빛을 들으면 가사 중에 '사랑에 실패했어, 사업에 실패했어,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어'라는 말이 나온다. IMF 때 나온 노래였다.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가사 치고 커버하는 연령층이 참 다양하다. 지하철에서 애쵸티 오빠들 노래를 들으면서 흥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서 흥겨워하는 걸 여기 있는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엄청 콘서트 7080 같다고 생각하겠지, 하는 마음에 혼자서 큭큭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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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 버튼이 왜 플로피 디스크 모양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출현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긴 했다. 학교 갈 때 준비물이 플로피 디스크였던 나의 세대와 매우 차이가 큰 세대임에 틀림없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데 이 세대는 음성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문자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편하게 여긴다고 한다. 치킨을 전화보다는 문자로 주문하는 걸 선호하는 세대이다. 문득 이다음 세대는 또 어떤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서 독보적인 세대 문화를 만들어나갈까 궁금해졌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치킨을 앱으로 주문하라고 하면 복잡해서 하지 못하실 텐데, 나도 아마 십 년만 지나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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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급식체만 해도 신기한 점이 많다. 실화냐 다큐냐 멘큐냐, 라는 말에서도 멘큐가 설마 멘큐의 경제학의 멘큐를 말하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있다. 나는 대학교 입학해서 경제학 입문을 듣기 전까지 멘큐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요즘 십 대들은 멘큐를 다 아는 건가, 오 뭔가 지적이야 이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멘큐는 뭔가의 줄임말일지도 모른다. 멘탈 큐트 라던가, 멘붕 큐 라던가... 이렇게 적어대고 있으니까 제대로 문찐이네... (*문찐 : 문화적 찐따, 문화 찌질이 뭐 그런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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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입사했던 기획자 분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긴 분이었다. 언젠가 점심을 먹는데 자긴 나중에 메뉴가 딱 10개만 있는 식당을 하고 싶다고 했다. IT 회사의 기획자로 사는 건 계속해서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도 계속 변하고, 기술도 변하고, 디바이스도 변하고 그걸 계속 알아야 한다는 게 압박이 심하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는 변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진짜 맛있는 요리를 딱 10개만 배워서 식당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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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해도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폰을 두고 뭘 사야 할지 고민할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딱 끌리는 건 아이폰 8이다. 원래 쓰는 거랑 비슷해서 더 예쁘게 보이고 가운데 버튼이 없는 아이폰이라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에 반해 아이폰 X는 훨씬 혁신적으로 변했고 새로운 기술들이 적용되어 있다. 딱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걸 기피하면 금방 꼰대나 문찐이 될 것 같아서 새로운 폰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은연 중의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얼굴 표정에다가 이모티콘을 씌울 수 있다는 기능 때문에 좀 더 망설임 없이 아이폰 X를 기다렸다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역시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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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을 살면서도 요즘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다. 어떤 시간에 이르면 더 이상 요즘 사람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되고, 또 어떤 시간에 이르면 저문 세대가 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적 기술적 삶의 방식들이 범람하게 되겠지. 적당히 포기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즐거움을 줄 때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아직 급식체가 재밌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