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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Nov 08. 2017

나는 누구인가

다문화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

작년에 스웨덴 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아이가 가져온 과제이다.

"나는 누구인가"

단순한거 같지만, 단순하지 않는 이 과제는 한학기 내내 우리 아이가 해야 할 수업의 주제였으며, 

개인 과제의 주제였다. 


"엄마, 나는 누구에요?"


딸 아이의 질문에 짐짓 고민이 된다. 

초등학생들에게 이런 철학적인 숙제를 주다니...

저번에는 국가의 형성에 대한 숙제가 나오더니, 이번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니...

40여년을 살아온 나도 내가 누구인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데, 고작 10살인 아이들에게 이런 숙제를 내주다니 정말 너무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당시 우리 딸 아이는 열심히 학교 운동장을 파 헤치던 시기였다. 영어 실력보다는 땅 파는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던 우리 딸아이에게 이런 숙제를 내주다니....한 숨이 먼저 나온다. 


"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볼멘 소리를 하여 봤자, 숙제는 숙제인지라 해야한다. 

아이와 같이 식탁에 앉아 우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이름, 나이, 가족 그리고 국적....

한국에서 이러한 숙제가 나왔다며, 본인이 한국 사람이라고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어느 지역에 사는지는 밝히겠지. 하지만 여기는 스웨덴이지 않는가? 나는 스웨덴 사람도 아니고 잠시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이니 당연히 나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설명이 가능한 부분들이 많다. 


외국에 있다보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내가 누구이고 나를 설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지금껏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눈에 띄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눈에 띄는 존재였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시절이었던거 같다. 당시 미용사를 준비하던 동생이 있었다. 내 여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그 동생이 하루는 나에게 머리 염색을 해주겠다고 하는 거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 당시 호텔리어라는 드라마 속의 이승연 머리 스타일이 유행을 했던거 같다. 이승연의 붉은 빛깔이 약간 도는 와인색을 기대 했건만, 무엇이 잘못된건지, 나의 머리색깔은 와인 색보다 훨씬 더 진한 색으로 나왔다. 내 머리색깔은 당시 서태지가 '하여가'에서 하고 나온 것처럼 거의 빨간 색이었다. 물론 당시, 서태지의 빨간 머리 역시 유행이었고, 이것을 따라하는 젊은이들도 꽤 있었다. 반항의 상징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반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사춘기도 언제 왔다 지나갔나 싶게 참 별 재미없이 살았던 내가 졸지에 반항아가 된 것이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 가기 전 까지 나는 당시 반항의 상징인 빨간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녔었다. 지금도 여동생들과 만나면, 당시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아무튼 이때가 내 생애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된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에 살다 보니, 내가 빨간 머리가 아니어도 나는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내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온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했다. 물론 이것으로 인해 차별을 경험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차별을 직면하기 이전에 나는 내가 어디를 가든 남들과 뚜렷이 구별되며, 대중에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이 구별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참 낯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내가 가진 문화적인, 지리적 그리고 국가적 배경에 대해 사뭇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 4년전 쯤인가 내가 살던 지역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수업 첫날 강의실에 들어서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학생이 있었다. 외국인이었다.  

내 수업에 외국인 교환학생이 있구나 생각을 하며, 출석을 부르는데,  한국이름의 호명에 그 학생이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내가 실수를 할 뻔 했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우리 반에 교환학생도 있네라고 잔망스럽게 이야기라도 했다면, 정말 그 학생에게 큰 실례를 했을거 아닌가.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했다. 


남학생의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었다.

필린핀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그 남학생은 다문화 가족의 자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문화 가족 2세대이다. 그 남학생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남학생에게는 여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 여동생은 다행히도(그 학생이 쓴 말이었다.)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여동생이 본인과 같이 다니면, 친구들이 와서 너는 왜 외국인이랑 다니냐고 묻기도 했다. 


명절 때만 되면, 할머니도 큰 어머니도 고모들도 입지 않는 한복을 왜 남학생의 어머니는 꼭 입으셨는지, 

요리 솜씨가 좋아 김치를 맛깔나게 담그시는 어머니에게 동네 할머니들이 한국 사람 다 되었다고 칭찬을 하실 때, 왜 마음 한켠이 허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그 남학생은 필리핀 말은 거의 못하고, 외할머니가 계시는 필리핀은 지금껏 3번 정도 다녀온 것이 고작이라 했다. 당시 그 학생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 대학에서 강의한 것이 벌써 4년도 훨씬 지난 일이니, 그 학생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때 부터 아빠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자식이 부모를 닮았다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일상에서 별 생각 없이 서로의 가족을 닮았다는 말은 우리는 자주 사용하고 듣는다. 하지만 본인이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그 학생이 그렇게 이야기 하던 순간, 왜 나는 뭔가 턱하고 걸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부끄럽게도 나는 당시 그 학생이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말에 '이런 ...'하고 생각을 했었다. 





이 글을 쓸 때 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로 전학생이 늘고 있다는 어느 초등학교 이야기가 실린 기사를 보았다. 


마음이 참 쓰다. 


만약 여기 스웨덴에서 우리 딸 아이 반에 외국인 혹은 이민자 가족의 자녀들이 많다고 스웨덴 학생들이 불평을 했다면, 내 마음은 참 슬프고, 우리 아이에게 많이 미안 했을거다. 부모야 선택을 한 삶을 산다고 치지만, 이런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우리 딸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가장 많이 걱정한 것 중 하나가 외국인이라 차별을 받으면 어찌하나였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혹시 우리 딸이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받을까봐 얼마나 전전긍긍 했는지 모른다. 


다문화 가족의 자녀들이 많다는 이유로 전학을 결정했다는 그 부모들의 행동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학을 간 학생들의 학부모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아직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받아드릴 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회통합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다문화 가족에 대해 편협한 선입관을 갖고 있는 개개인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 넘기는 행색일 수 있다. 


이민자의 수는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 더 증가할 전망이다. 그것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증가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민노동자 혹은 이민자들을 인구 보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감소가 확실시 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상황 상 젊은 노동자의 유입은 보너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을 폄하하며 심지어 무서워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이들이 우리에게 보너스인지 혐오의 대상인지 그것은 우리가 결정한 문제이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이들에 대한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무리 이들이 본인의 선택에 의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문을 열어 준 것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환경과 조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역시 우리 사회 안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이들의 삶에 우리는 방관자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본인이 한국인임을 밝혀야 하는 그 남학생이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입니까,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외국인 엄마를 두고 있는 나는 한국인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이방인입니까?"

이 청년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들에게 다문화 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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