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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Sep 18. 2017

사랑하는 엄마에게

우리 아이들의 밥 그릇

엄마와 여동생 내외가 다녀갔다.

엄마 오시면 뭐해드려야 하나,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무릎 관절이 안 좋으신 엄마와 임신한 여동생과 다니다 보니, 계획한 일정의 반 절도 못다녔던거 같다.


그래도 습하고 더운 한국의 여름에 지쳐있던 가족들에게 스톡홀름의 청명함은

그 어떠한 풍경보다 감동인거 같았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엄마는 연신 " 좋다"라는 말을 하셨다.


막내 여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엄마는 감흥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평소에 무엇이 아주 좋고, 아주 나쁘다는 말이 별로 없으시고, 내색도 별로 없으시다.

원래 그렇게 감흥이 별로 없었던 것인지, 살다보니 감흥이 무뎌지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동생 말처럼 그런거 같기도 했다.

' 우리 엄마는 좋다 나쁘다 표현을 잘 안하시는 구나...'


선물을 사드려도 좋다는 말도 없으시고, 그렇다고 싫다는 말도 없으시다.

친구 모임에 선물로 사드린 옷을 입고 나가시면, 선물이 맘에 드셨구나 정도로 짐작을 한다.

물론 이것도 눈치 빠른 여동생이 귀뜸을 해줘야 아는 사실이다.


그런 엄마가 이번에 여기 와서는 연신 좋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 세상에 저 하늘 봐라", " 구름 봐라", " 건물 봐라", "여기 사는 사람들 봐라" 등등...

도연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하는 엄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된거 같았다.

나도 속으로 '엄마가 정말 좋으신가 보다" 생각을 하는데,

언제나 엄마에게 가장 착하고 살가운 딸인 여동생이 그런다.

 

" 언니~ 엄마가 어제 그러는데 여기 너무 좋데".

"그래?"

" 언니도 알잖아. 엄마가 원래 뭐가 좋아도 좋다고 잘 안하잖아, 예전에 내가 처음 해외 여행 모시고 갔을 때도

별로 좋다는 말을 안하더니, 이번에는 얼마나 좋은지 자기 전에 누워서도 좋다고 그러더라"


무릎이 때문에 무리 하시지 말고 좀 쉬었다 가자는 말에도 엄마는 저 만치 걸어가시며, 젊은 애들이 왜 그리 행동이 꿈뜬지 영 못마땅해 하셨다.


우리 엄마에게 이번 여행은 첫 유럽 여행이었다.

 

우리 집에 도착하는 날 엄마와 여동생 내외는 정말 가져  올 수 있는 최대치의 짐을 잔뜩 들고 왔다.

여기 오면서 분명 이런저런 한국 음식들을 잔뜩 가져 오셨으리라 짐작은 됐다.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나 놀라며, 가져온 가방짐을 풀었다.


그런데, 첫 유럽 여행인 우리 엄마의 여행 가방에는 단 한벌의 옷만 들어 있었다.

엄마의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운것은 김치와 온갖 한국 음식들이었다.

 

" 엄마, 옷을 한벌만 갖고 오면 어떻해~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가져온거야!!"

" 내가 무슨 옷이 필요하냐? 한벌이면 되지. 음식 가져올게 더 많았는데, 다 못가져오고 두고 온게 너무 분한데...."


' 아....엄마....'

음식이 상하지 않을까 정신없이 음식을 정리하는 엄마를 보며, 너무 속상한 나머지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 엄마, 옷 사자, 그래도 유럽 여행인데, 어떻게 한벌만 입고 다녀, 사진도 찍어야지!!"


당연히 엄마는 옷을 사시지 않으셨다.

다양한 배경 속 가족들 사진이든 엄마 단독 사진이든...엄마의 옷을 한결 같았다.

도중에 내가 사준 머플러를 두르고 찍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으로 구분이 될 뿐이었다.


장을 보러 엄마랑 나왔다.

잠시, 동네 공원 의자에 앉았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뜬금없이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고 하는 말있지? 그것도 틀린 말이다."


무슨 소린인가 하고 듣고 있으니,


" 옛날에, 자식 낳아서 어떻게 키우나 걱정하면, 어른들이 그랬잖아.

걱정 말라고 옛말에 다 자신의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고.

그런데 그 말은 틀린거 같다.

아이들은 지 부모가 어떻게 사는지 따라 밥그릇이 달라. 안그러냐? 엄마 아빠가 못 배워서 너희가 더 고생한거 내가 알지.....

그런데 여기 사람들 보니, 사람은 어느 나라에 태어나는냐에 따라 지 밥그릇이 다른거 같다."


엄마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아장 아장 걷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 그리고 은발이 멋진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고 계셨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사신 우리 엄마는 왜 뜬금없이 옛말이 틀렸다는 넋두리를 하시는 걸까?


" 엄마, 예전에는 다 그랬을거야, 다들 힘들게 살았다며, 그러니까 그런 말이라도 믿어야 위로가 되지..."

"그랬을지도 모르지.... 막막한 시절, 아이들은 커가는데, 돈 나올 구멍은 뻔하니...그런 말이라도 믿어야 살지....그런데 승희야, 엄마는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이야기를 하는거야. 너희 할머니때랑 내 때랑 너희는 다르잖냐...도연이 때는 더 다르고.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았지만,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되니까 하는 소리다. "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다는 본인 밥그릇은 부모에 따라 다르고 무엇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냐에 따라 다른다는 것을...엄마는 말씀하고 싶어라 하신다는 것을 안다.


" 난 그래도 우리나라가 좋아. 엄마 아빠가 다 있잖아"

" 무슨 소리냐, 너희가 여기에 있으니 이렇게 좋은 곳도 나와보는데...요새는 글로벌한 사회라 본인 좋은 곳에서 사는 거야"


엄마 입에서 '글로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생소하고 웃음이 나왔다.

동네 목욕탕에서 냉커피 마시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며, 몇 십년 지기 친구들과 가끔 만나 화투를 치며,

손자를 볼 정도로 늙었어도 여전히 화투 매너가 꽝이라며 모임에서 올때마다 특정 친구를 흉보는 엄마가,

평생을 군산에서 사셨던 우리 엄마가 요새는 글로벌하기 때문에 세상 어디든 살아도 좋단다.  


나는 안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알 것이다.

그냥 지나쳐 보는 삶과 실제로 살아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타국에 사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 엄마는 안다.

어느 세상이 우리 자식들에게 더 좋은 세상인지,

어느 세상이 우리 자식들의 밥그릇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대접받고 살게 해주는 곳인지.


우리 엄마는,

경유하는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렵고,

스웨덴 사람에게 꿋꿋하게 한국말로 물어보아도 의사소통이 되고,

좋아도 좋다고 이야기 잘 하지 않는 감흥이 별로 없는,

생애 첫 유럽 여행 오시면서, 첫 딸네 음식을 바리바리 챙기느라 정작 본인 옷은 단 한 벌 챙겨오는  아주 옛날 사람이다.


세상 돌아가는데 눈이 어둡고, 지나간 세대이지만, 우리 엄마가 가장 잘 아는 것이 있다.

바로 본인 자식들의 밥 그릇 문제였다.

잘 먹이고, 잘 키우는 것.


그런 우리 엄마에게 스웨덴은 ' 밥 그릇'을 채워주고 지켜주는 나라로 보였던 것이다.


내가 열심히 여기서 복지국가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분배의 정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때,

화투에서 셈이 느려 양장점 아줌마에게 또 속 았다고 화를 내시는 우리 엄마는 아주 분명하게 복지국가의 정의를 내려주고 가셨다.


" 우리 자식들의 밥 그릇이, 부모에 따라 달라지지 않게 하는 나라, 그리고 각자의 밥 그릇을 따뜻하게 온전하게 채워주고 지켜주는 나라"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내 통장에 50만원의 돈이 들어왔다.


'사랑하는딸에게'


통장에 찍힌 글을 보고, 엄마를 닮아 감흥이 별로 없는 나의 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너희가 우리 갔다고 돈 많이 쓴거 알아...별로 많이 못부쳤다."


무슨 돈을 부쳤냐고 전화를 건 나에게 엄마는 연신 우리가 돈을 많이 써서 어쩌냐며 걱정을 하셨다.


엄마를 닮아 감흥이 별로 없는 나는,  나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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