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박사의 정책 이야기 두번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분명하게 어느 시점부터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누구는 청명한 하늘에서, 누구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결에서, 누구는 사람들의 옷에서 가을이 옴을 말한다. 농사를 짓던 우리 할머니께서는 그 거친 손으로 벼 이삭을 만지면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시곤 하셨다.
계절이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바뀌는 것 처럼 시대 역시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역사 속에서 한 시대가 저물면 다른 시대가 도래하곤 했다. 그래서 혹자는 '역사를 흐른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맞다. 역사는 흐른다. 하지만 흘러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역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대비한다. 그래서 또 다른 혹자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이 말 역시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과오를 다시 행하지 않기 위해 대비하고 대안을 만든다. 과거를 교훈삼아 우리들이 만든 대비책과 대안이 바로 정책과 제도들이다. 하지만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빈곤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봤을수 있고 간접적으로 알 수도 있다. 여하튼 빈곤 다시말해 가난을 우리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도 다 알고는 있다. 그리고 빈곤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빈곤을 무엇이라 규정하든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빈곤을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다. 실제로 빈곤은 아주 다양하게 이해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빈곤이란 단어는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만 아주 모호한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빈곤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빈곤이 무엇인가하는 것보다 "누가 빈곤한가, 빈곤한 사람들은 누구인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요, 연로하신 노인분들이요, 장애인이요, 미혼모요, 직장이 없는 사람들이요...."
학생들이 대답한 부모가 없는 아이, 고령의 노인, 장애인, 미혼모 그리고 실직자...이들은 우리 사회 취약계층이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분명 빈곤에 처할 위험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빈곤한 사람들일까?
빈곤의 정의가 모호하고 어려운 것처럼 언제부터 빈곤한 사람들이 있는지 그 역시 단정짓기 힘들다. 가난함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었던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빈곤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즉, 시대에 따라 빈곤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같지 않았다. 특히 자본주의 출현 이후 빈곤은 그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본주의 출현 이후 빈곤의 양상은 그 이전에 비해 양적으로 엄청나게 확대되었고, 무엇보다 빈곤은 사회적 낙인이었다. 빈곤함은 사회적 수치였고, 심지어 사회악이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잠시, 이야기의 장을 16~19세기 영국으로 옮겨보고자 한다.
14세기 부터 19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격변 속에 사회가 크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그 변화의 정도가 얼마나 컸으면 산업 혁명이라고 후대 사람들이 칭하였을지 상상해보자. 혁명이라 칭할 정도로 산업의 변화 다시말해 자본주의의 도래는 19세기 영국은 많은 것의 변화를 주도했다. 특히 자본주의는 기존의 생산 양식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농사를 짓던 많은 이들이 땅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일거리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일명 부랑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부랑자(浮浪者,떠도는 사람들)란 용어는 이 시대가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빈곤한 사람들 혹은 부랑자라 일컫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자 그 당시 영국은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정책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엘리자베스 빈민법(1601년)이다.
빈곤의 증가를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최초의 정책이 바로 엘리자베스 빈민법인 것이다.
즉, 빈곤한 이유는 빈곤한 사람들이 나태하고 게으르며 불결하고 무지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빈곤은 개인의 결함에서 나오고 더 나아가 죄악이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빈곤한 사람들을 관리하던 곳이 있었는데 빈곤한 사람들을 강제 노역시키기 위해 이 곳에 감금하였으며, 이 곳의 혹독한 환경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잡아 이마나 볼에 인두로 낙인을 찍기도 했다.
이 시대 빈곤은 강력한 통제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정부는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가혹하고도 엄격한 통제정책을 펼치게 된다. 즉, 빈곤한 자들에 대해 가혹하고 수치스럽게 여길 만한 낙인을 주면 빈곤에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이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당시 정부가 인플레이션이라든지 대량 실업과 같은경기 변동의 원인에 대해 이해했을 리는 없다. 당연하게 빈곤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빈민 정책은 향후 300여년가 넘게 지속되게 된다.
이러한 빈민법의 종식은 2차세계대전 이후 온 유럽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영국 역시 대부분의 도시는 폐허가 되었으며, 더 이상 희망이라는 것이 없을 것 같던 그 시기 영국 복지국가의 청사진이라 일컫는 베버리지 보고서가 출간되게 된다(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는 보편주의와 국민의 최저생활 보장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 정책을 주장하는데,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의료 서비스, 연금제도, 실업급여, 가족수당, 완전고용, 의무교육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정책들이지만 당시 정부 각료들에게는 너무 혁명적인 내용이어서 정부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버리지 보고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당시 베버리지 보고서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로 비교 했을 정도니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다시,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에서 빈곤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변화되었을까?
빈민에 대한 근대적 정책의 시작은 박정희 정부시대 도입된 1961년 생활보호제도로 볼 수 있다. 1961년 도입된 생활보호제도는 빈곤한 자들을 위한 공공부조의 성격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제도였지만, 이 제도가 가진 빈곤에 대한 인식은 18~19세기 영국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빈곤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두고 개인의 빈곤은 개인 혹은 그 개인의 가족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급여 대상자의 선정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웠으며, 정책의 성격 역시 시혜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그래서 생활보호 대상자는 개인의 무능함과 가족의 무능함을 철저하게 증명해야만 했으며, 이러한 과정은 개인과 그 가족에게 수치심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보호제도가 크게 변화하는 시기를 맞는데 바로 단군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라 불리웠던 IMF 경제 위기였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기존의 생활보장법을 대처할 만한 새로운 공공부조 정책을 시행하는데,
경제 위기로 우리 사회는 대량실업과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빈곤한 사람은 무능하고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대량 실업이라는 사회문제 앞에 그 누구든지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나는 가게들과 기업들이 즐비했으며, 양복을 입은 채 공원에서 하루 시간을 보내는 중년 가장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길이 막막한 가장들은 극단적인 선택인 가족 자살을 하기도 했고 이러한 소식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또한 이 시기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露宿者)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외환 위기는 우리의 많은 것을 무너뜨렸으며, 많은 가장들이 직업을 잃었고, 많은 가정들이 헤체되었으며 수 많은 빈곤 인구를 양산했다.
이 또한 역사의 역설인가?
실제로 한국의 복지국가 시작점을 외환 위기 이후 바로 김대중 정부로 보는 시각이 상당히 우세하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는데 앞에서 말한 국민기초 생활보장법의 시행, 건강보험의 통합 그리고 국민연금의 확대 등 국민의 기초생활 보장과 주요 사회보험의 기틀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빈곤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역시 이루어지게 된다. 시혜적인 성격의 생활보장법을 페지하고 근로의 능력 유무에 관련 없이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최저 소득을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은 우리나라 빈곤정책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여러 문제점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도입과 시행은 우리 사회에서 빈곤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변화를 의미한다.
영국과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가 다르고 국가가 다르지만 빈곤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의 시기에서 우리는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두 국가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빈곤에 대해 역사는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든 경제적 위기 상황을 통해서든 그 사회는 시대적 아픔을 통해 성숙했으며, 빈곤 혹은 가난에 대해 보다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정책의 변화에 반영되기 이르렀다. 물론 빈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빈곤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곤의 양상이 더 증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이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빈곤의 모습이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하는가? 역사 속의 빈곤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역사적 인식의 반영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의 모습은 경제위기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을 설명하는 용어들이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빈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빈곤의 덫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근로 빈곤층이 전체 빈곤층의 36%를 넘었다.
우리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빈곤의 모습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것을 고수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