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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Mar 29. 2017

당신의 당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스웨덴 정책 이야기 셋: 스웨덴 의회 탐방기 

길기만 하던 스웨덴의 겨울도 이제 조금씩 물러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대지의 냄새와 공기의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미세한 공기의 차이도 느껴질 만큼 자연이 맑다는 것인지, 내가 그토록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나만 이토록 봄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탄핵 선고일 당시 광장의 누구가는 "봄이 왔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봄이 왔는가? 서울의 광장에도 봄이 왔는가?

유난히 길고 길었던 겨울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정말 봄을 맞이 하는가?





3월 25일 나는 딸 아이를 데리고 Riksdag(의회)를 다녀왔다.

오늘 이야기는 스웨덴 정치의 중심, 스웨덴 의회 방문기이다.


<많은 방문객으로 붐비는 스웨덴 의회 내부 모습>


지난주 토요일 스웨덴 의회에서 여러 행사가 열렸다.

물론 스웨덴 의회는 주중에는 스웨덴어 가이드 투어, 토요일과 일요일은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어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되고 있다. 하지만 2년에 한번 스웨덴 의회는 모든 시민들에게 의회를 개방을 하고 여러 행사를 진행하는데, 지난 주 토요일이 바로 그 날이었다.


이 날 의회 전체 건물에서 여러 행사가 열렸다.

- 어린이를 위한 작은 의회(아이들이 의원석에 앉아서 정치인들과 의회 진행을 해보는 것이다. 인기가 많다.)

- 스웨덴 의회의 과거와 현재

- 가상 의회 참관(실제 정치인들이 한 시간 넘게 의회 회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정치로 떠나는 여행(이 프로그램을 놓쳐서 너무 아쉽다!!)

이 외에도 각 층마다 여러 정치 행사들이 진행된다.


<딸 아이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던 안내요원 >

이 날 행사에는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의회를 찾았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방문하기도 했다. 의회 곳곳에는 많은 안내원들이 서 계셨는데, 의회 방문객들에게 먼저 다가와 질문이 있는지를 물어보시고, 어떠한 질문에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행사도 행사지만, 내가 의회를 방문한 목적은 바로 이날 스웨덴 8개의 정당 정치인들과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 당의 정치인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의회 5층으로 올라가자 8개의 정당들이 작은 부스를 설치하고 소속 당 정치인들이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곳곳에서 정치인들과 토론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스웨덴 제 1 여당인 사민당은 질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행사 시작 부터 붐비고 있었다. 역시 사민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치인과 대화를 기다리며 붐비는 사민당 부스 앞>

나는 우선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적은 다른 당 부스로 향했다. 사민당 바로 옆에 있었던 자유당(Liberal Party)에서 부터 시작해 나는 모든 당을 돌며, 여러 질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스웨덴 민주당>


나는 주로 나의 관심 영역인 사회복지와 가족정책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더불어 요즘 유럽에서 계속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정당들의 생각도 물어보았다. 각 당에 대한 복지와 세금 그리고 가족정책에 대한 대답을 통해 나는 각 당들이 갖고 있는 복지에 대한 정책적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스웨덴 정당들은 주로 경제와 복지 각 정책 분야 별로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가치와 사상을 중심으로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하지만 같은 좌파와 우파에 속한 정당들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갖고 있는 정책적 차이는 분명하다. 즉, 같은 좌파로 분류되는 사민당과 녹생당의 정책적 색깔이 같지 않고, 같은 우파라 하더라도 기독교 민주당과 자유당,보수당의 정책적 색깔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가족정책은 이러한 정책적 차이가 드러나는 정책 영역이기도 하다.


기독교 민주당은 가족의 (전통적인)가치에 대해 그 중요성을 상당히 강조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우파 정당인 자유당은 기독교 민주당과 다소 상이한 입장차이를 보였는데, 개인의 독립을 강조하는 자유당은 가족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게 여기지만, 가족 내 여성과 남성의 지위 역시 개별적이고 (경제적) 독립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 평등 특히 여성의 노동에 대한 부분에서 두 정당은 다른 입장을 보였다.

사민당의 경우 현재 이들이 갖고 있는 가족정책의 이슈는 다른 것보다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러 이민자 가족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 간의 다양성이 이들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라는 것이다.


<1809년 의회주의가 생긴 이래 스웨덴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어떠한 시기가 가장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한 노부부가 서 있다>


아무튼 긴 기다림 끝에 행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드디어 사민당 정치인과 개별 질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사민당 정치인은 Anna Lena Sorenson이었다. 1954년 생인 그녀는 30여년간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다 뒤늦게 정치인이 되었다. 현재 사회 위원회 부의장이며, 국방 위원회 일원인 그녀는 체구는 작지만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미 몇 시간 동안 여러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했을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다소 묻어 나왔다. 그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다 대답해 줘야 했을 테니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순서는 행사가 마감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흔쾌히 한국에서 온 외국인의 질문을 경청해 주었다. 물론 나는 나의 관심 분야인 사회복지와 가족정책에 대해 집중 질문을 했다. 물론 이 질문들은 다른 당에도 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사민당에게는 다른 당에게 하지 않았던 질문 한가지를 더 했는데,


바로 " 왜 사민당이 스웨덴 역사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많이 지지 받는 당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였다.

쉽게 말해 '너희 당의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냐'였다.


잠시 생각을 한 그녀의 대답은,

사민당의 인기의 비결은 역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이야기 했다. 1900년대 초반 부터 스웨덴 역사와 사민당의 역사는 같이 해 왔고, 많은 역사적 굴곡 안에 사민당은 시민을 위해 헌신 했다는 것이다. 존경받는 많은 정치인들이 그러한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사민당이 갖고 있는 사상과 가치를 스웨덴 국민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민당의 가치는 바로 "연대'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 연대.


스웨덴 사회는 다양한 계층, 성별, 학별, 소득, 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스웨덴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연대 의식은 모두 같이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근간이며, 바로 오늘의 스웨덴이 있게 한 힘이고, 사민당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연대의 가치는 사민당이 갖고 있는 여러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족정책으로 들어보면, 사민당은 현재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가족들이 증가하는 이 시점에 계층 혹은 문화간 차이로 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사민당은 감지한 것이다. 실제 이민자들이 갖고 있는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은 스웨덴 사회에 긴장감을 가져 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긴장감이 사회적 갈등으로 커지는 경우 공동체는 분열 될 수 있고, 구성원 간의 연대 의식 역시 금이 갈 수 있다. 그래서 사민당은 다양한 가족들 혹은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어울려 가는 방법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스웨덴에서 실시되는 국가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스웨덴 정치인과 의회는 학교와 정부 다음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는 기관이다. 의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국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우리와 비교하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익숙한 정치인들의 모습은 정책적 사안으로 열렬하게 토론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 비방과 상대 후보와 그들의 가족의 비리를 폭로하는데 열을 올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정당이 고수하는 사상과 가치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그것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정치인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이 왜 필요한지, 철학적 가치 혹은 사회과학적 근거를 설명해 주는 정치인이 우리에게는 있는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가족정책에 대해 스웨덴 모든 정당은 가족은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스웨덴 가족이 겪는 문제를 다들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응방식은 달랐다. 현재 가족의 위기를 가족의 가치의 훼손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정당, 현재 세금이 너무 높기 때문에 아동이 있는 가족에 대한 세금 면제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 보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정당...


같은 문제에 대해 제시하는 해결책은 차이를 보인다.  어느 정당의 선택이 옳은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당 간에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책적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다. 또한 나는 정당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본인 정당의 정책을 설명하는 정치인과 그런 정당을 만나고 싶다.


대선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정당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복지정책만 한정지어 이야기를 하자면, 정당한 복지정책의 차이는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복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 모든 정당들이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복지를 확대할 것인지 그리고 왜 이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분명하게 정당간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복지 정책은 사회 자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왜 나누어야 하고, 어떻게 나누어야 하며, 누구에게 줄 것인지의 문제는 각 정당이 갖고 있는 가치와 정책적 신념과 연결 될 수 밖에 없다.


정책은 정치적 산물이지만,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권자는 본인의 선호에 맞게 혹은 본인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과 정당을 지지하면 된다.


문제는 우리의 정치가 정책 경합의 장이 아니라 온갖 비난이 난무하는 장이라는 것이다.

해당 후보에 대한 검증되지 않는 가족사와 개인사보다

나는 해당 후보가 갖고 나온 정책을 알고 싶다.

그리고 왜 그러한 정책을 갖고 나왔는지에 대한 해당 후보의 철학적, 정책적 고민을 듣고 싶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



의회 행사를 뒤로 하고 딸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딸 아이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어 자랑을 한다.사탕, 젤리, 풍선, 핸드폰 액정에 붙이는 악세사리 등등 각 정당의 로고가 그려진 여러 작은 선물들이다.

내가 정당을 돌면서 인터뷰 하느라 정신 없던 사이 우리 딸은 8개의 정당들을 다니며, 사탕과 젤리 같은 작은 선물들을 주머니에 열심히 챙기고 다닌 것이다.


" 세상에, 도연아 이걸 다 그냥 가져 온거야?"

" 아니요, 저도 엄마처럼 질문했어요."

그냥 사탕만 챙겨오기 미안했는지, 본인도 질문을 하고 다녔단다.

우리 딸 아이가 각 정당 부스를 다니면 한 질문은 단 하나였다.


"What does your party do?"

" 당신의 당은 무슨 일을 하는가?"


아쉽게도 딸 아이가 어떠한 대답을 들었는지 알 수는 없다.

딸 아이는 말로는 그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답을 아주 길게 해주었만, 어려워서 이해를 하지 못했단다.

중도당 로고가 그려진 젤리는 주기가 아까웠는지 슬쩍 주머니에 도로 넣으면서, 선심을 쓰듯 사민당 로고인 빨간 장미 모양의 스티커를 내 핸드폰에 붙여주었다.


대한민국에도 봄이 왔는가?

우리는 다시 중요한 결정 앞에 놓여있다.

대선을 준비하는 정당들에게 묻고 싶다.


" 당신의 당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봄이 오고 있다.

노을을 타고 바람이 불어 온다.

더 이상 매서운 바람이 아니다.

얼었던 대지와 나무를 달래 듯 순하고 포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기나긴 겨울을 뒤로 하고, 우리는 또 한번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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