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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Mar 31. 2017

모두를 위한 정책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

스웨덴에 올 때, 가장 걱정을 했던 것은 우리 딸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 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우리 딸 아이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니, 학교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거 같다.

가끔 아이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 학교 내부를 돌아보면,

나도 이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학교가 좋아서 월요일이 가장 좋다는 우리 딸에게도 여전히 적응이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축구'이다.

여기 아이들은 워낙 활동적이고, 나무도 잘타고, 운동도 잘한다.

나무는 우리 딸도 잘 타는 편인데, 문제는 여기 아이들이 즐겨 하는 축구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거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우리 딸 아이에게 개인적으로 특별 훈련(?)까지 해주는 것 같은데,

딸 아이 말로는 공이 마음대로 차지지 않는단다. 뛰는 건 자신이 있는데, 공을 다루는 것은 몸 따로 마음 따로라 신경질만 난다고 한다.


우리 딸 아이가 학교를 간 첫 날, 그날에도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난 여기 남자아이들도 축구를 좋아하나보다 생각하며, 무심코 운동장을 지나치려 하는데, 축구를 하는 아이들 틈에 여자 아이들이 보이는 거다.

처음에는 '남자 아이가 머리를 길렀나' 생각을 하며 유심히 보는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섞여서 축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맞다.

스웨덴은 여자 축구 팀이 유명하다(나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2002년 한일 월트컵 외에는 아는게 없을 정도로 무지하다. 그래서 여기 와서야 스웨덴 여성 축구가 유명하다는 것 역시 알았다).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내가 축구는 남자 아이(남성)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 질문을 해보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대학에서 여성정책, 그리고 성평등에 대해 강의를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에게도 전통적인 성역할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여기서 많이 발견하곤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편견을 발견하는 것은,  불편하지만 유쾌한 발견이라 생각 한다.




의회에 방문을 했을 때였다.

한 노부부가 스웨덴 민주주의 발전 과정 중 어떠한 해가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의미가 있었는지 묻는 조사 앞에 서 있다. 유독 1921년에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다(이 노부부 역시 상의 끝에 1921년에 스티커를 붙이셨다).


그렇다면, 1921년에 스웨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1921년이 스웨덴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해였다고 생각을 했을까?


1921년은 스웨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선거에 참여한 해였다.  


투표권에 대한 여성의 투쟁은 길고도 험난했다.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통 선거권이 유럽에서는 1920년대 들어서야 가능해졌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48년 남녀가 같이 투표를 할 수 있었고, 아직도 여성의 참정권이 없는 국가들이 있다 )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이래, 유럽 전역에서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투쟁은 지속되었다. 이 결과 핀란드를 시작으로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여성들의 참정권이 시민의 권리로써 자리 매김 하기 시작했다. 1906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1913년 노르웨이, 1915년 덴마크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의 권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권리는 북유럽에서 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했는데, 같은 북유럽 안에서 스웨덴은 가장 늦게 여성 투표권이 도입되었다.


스웨덴 여성은 1919년이 되어서야 투표할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스웨덴은 1919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었고, 1921년 드디어 여성은 남성과 같이 선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남녀가 평등한 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 여성의 선거권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다소 늦게 도입이 되었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의 역사는 짧다.

1930년대까지 스웨덴 사회에서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현재 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어떻게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었을까?


영국의 유명한 여성 사회학자인 Jane Lewis가 스웨덴 젠더 평등의 역사에 대해 쓴 글을 읽을 적이 있다.

그녀는 본인의 글에서 여성 평등 투쟁이 영국과 미국 보다 다소 늦고, 약했던 스웨덴이  어떻게 지금은 다른 나라보다 더 성평등적인 국가가 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웨덴이 택한 젠더 평등의 방식이 영국과 달랐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이 달랐다는 것인가?

스웨덴이 택한 방식은 남성과 여성의 다름과 같음을 둘 다 인식하고 조화하는 방식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다름(difference)과 같음(equality).


흔히 이것은 울스턴크레프트 딜레마라 부른다.

쉽게 말해서, 여성이 처한 가족과 돌봄이라는 상황을 이야기 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남성과의 평등만을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수퍼 우먼이 되거나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머무는 것(예: 파트타임 노동)을 선택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함을 의미한다.

이 딜레마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로 여겨졌다.

물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가사 노동을 사회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돌봄 노동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동을 돌보고, 가족 중 누구가를 돌보는 것은 분명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지만 단순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이를 혹은 누구가를 돌본다는 것은 타인을 보살피는 것이며. 여기에는 따뜻한 감정과 관계가 수반되는 행위이다. 즉, 돌봄의 사회화 혹은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일부 가능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사회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바로 이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Jane Lewi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웨덴은 여성이 처한 이러한 딜레마를 다른 시각으로 본 것이다.


차이와 다름의 딜레마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을 여성만의 문제로 단정짓는 순간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지만,

남성이 이러한 문제 상황에 참여하는 순간 이것은 해결 가능한 문제가 된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스웨덴 사회에서 일어났던 젠더 평등 논쟁에 주요 이슈는 여성의 노동권과 남성의 돌봄 참여였다. 당시 스웨덴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에바(EVA Moberg)는 본인의 책에서 노동자와 돌봄자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국가 정책이 남성의 돌봄의 분담과 가사의 분담을 유도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젠더 평등 정책은 여성에 대한 조건적 고용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젠더 평등은 불완전한 것(그녀는 이것은 가석방으로 비유함)이라 주장한다.


1974년 당시 사민당 정부의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Olof Palme)도 젠더 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지위 향상과 더불어 남성 역시 돌봄 노동에 참여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했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뒷받침으로, 1974년 스웨덴에서 최초로 아버지의 돌봄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명시한 부모휴가가 도입된다. 특히 스웨덴 부모 휴가 제도는 아동 돌봄에 있어 아버지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74년 도입된 부모휴가는 아동 출생 후 6개월간 부모의 고용소득과 연계된 유급 휴가로 주어졌다. 부모 모두에게 휴가의 권리가 있고, 이는 서로에게 양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휴가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총 12개월로 확대되고, 이후 휴가기간과 휴가급여 대체수준은 80%전후에서 증감의 폭을 보이며 발전 하게 된다.


그리고 1994년 '아버지의 달(Daddy's month)'이 도입되는데, 이 제도는 부모휴가 중 한 달을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간이 없어지는 양도 불가능한 제도로 만들어 졌다. 따라서 아버지가 '아버지의 달'을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은 가족의 입장에서 총 휴가기간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제도는 2002년총 이 개월로 연장되고, 2016년 다시 한 달이 더 연장되어 현재 아버지의 달은 총 3개월이다.


스웨덴 성평등의 비결은 바로 남성의 돌봄 참여였다.

스웨덴은 일과 돌봄에서 오는 성 불평등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의 해결은 남성의 참여로 가능함을 알았다.



스웨덴 의회에는 여성의 방이 있다.

이 방은 1994년 스웨덴 여성 참정권 75주년을 기념해 만든 공간이다.


성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스웨덴 여성들은 과연 본인들의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성의 방'에서 만났던 여러 명의 여성 노동 위원회 분들은 여전히 스웨덴은 성평등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성평등을 향해 갈 길이 멀다고 말하고 있었다. 노동시장(임금격차, 노동시간, 지위, 승진 등)에서 혹은 일상 생활(가정 폭력, 성폭력 등)에서 여전히 성 평등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이래, 스웨덴에서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나왔고, 이들은 지금도 스웨덴 여성의 삶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성별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이들은 여전히 스웨덴에서 성평등은 도달하지 못한 목표라 했다.

 


비록 이들의 말처럼 아직 스웨덴 사회는 완전한 성 평등한 사회는 아닐 수 있다.

(나는 잠시 과연 이러한 사회가 도래 할지 상상해 본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나 아이스하키를 하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은 신기한 광경이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아버지의 모습 역시 스웨덴에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아이스 하키복을 입어 식별이 불가능 하지만 남녀 아이들이 어울려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다. 현재 골을 넣으려 하는 아이도 여자 아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의 할머니는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을 갈 수 없었고, 투표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루어 놓은 것으로, 현재 스웨덴 아이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어울려 뛰어 놀 수 있으며, 남성들은 회사나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을 마음껏 돌볼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그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스웨덴이 생각하는 젠더 평등 사회는 여성만의 것이 아니었다.

남성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젠더 평등한 사회는 어느 특정 성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젠더 평등한 사회는 한 인간이 부모로써, 배우자로써, 노동자로써 그리고 한 시민으로 평등하고 배려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적어도 여기, 스웨덴에서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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