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딱하게) 왜 그래야 하는데?
지금 스웨덴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여름에 접어 들었다.
작년 8월 여기 왔을 때, 누군가 그랬다.
스웨덴의 여름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보물'이며, 자연의 '선물'이라고.
당시에는 '여기 사람들은 햇볕을 유별나게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생각 했었다.
나는 햇볕 보다는 선선한 그늘이 좋아서 그늘을 찾아 다닐때, 여기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햇볕을 보며 느긋하게 누워 있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나니, 나 역시 햇볕 바라기가 되었다.
여기 여름은 시원하고 청명하다.
그리고 햇살이 눈부시다.
그 청명함이 스웨덴의 모든 것을 아름답고 눈부시게 만드는거 같다.
물론 이런 햇볕 호사를 누리는 것도 불과 몇 개월 밖에 되지 않기에 더욱 소중하다.
또한 지금은 스웨덴에서 가장 크게 세일을 하는 기간이다.
보통 이 기간에 세일을 50% 이상 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나 역시 이 기간을 기다려 왔다. 그 동안 필요했지만 세일을 크게 하는 이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이와 내 옷을 사기 위해 H&M으로 향했다. 하지만 옷을 사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바로 이네들의 옷이 도통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거다.
특히 바지의 경우 더욱 그랬다.
저렴하고 이쁘면 무엇을 할까....그렇다고 억지로 옷에 내 몸을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아이 옷만 몇개 사들고 나왔다.
여기 와서 옷 특히 바지를 살 수 없다는 한국분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이쁘고 저렴하지만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에 미련을 못 버리며 궁리를 한다. 하지만 살 수 없다.
맞지 않는 옷을 만지작 거리며 생각한다.
제도와 정책도 옷과 같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나름 선진 복지국가라 불리는 국가들이 많다. 유럽의 많은 국가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다양한 복지국가들을 우리는 나름 비슷한 특징을 갖는 것들로 분류하곤 한다.
첫째, 자유주의 복지국가들이다. 영국, 미국 그리고 호주와 같은 영어권 국가들이 여기에 속하며, 이 국가들은 자산조사를 통한 빈곤 구제에 중점을 두고, 복지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복지 제공의 측면에서 시장과 민간의 역할의 비중 큰 국가들이이기도 하다.
둘째, 독일,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이 속해 있는 유형으로 전통적으로 사회보험의 역사가 길고, 사회보험이 복지의 주된 주축이 되는 특징을 가진 국가들로 이들을 보수주의 복지국가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스웨덴과 노르웨에, 핀란드, 덴마크 등의 북유럽 국가들이 속한 복지유형의 국가들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를 갖고 있으며, 이들의 정책은 보편성과 관대함을 특징으로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국가들을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유형이라 부른다.
물론 이것은 내가 분류한 것이 아니다.
Esping-Anderson이라는 아주 유명한 학자의 연구 결과이다.
물론 내가 설명한 것보다 더 복잡한 기준으로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를 했다.
내가 이야기 한 것은 아주 극단적으로 간단히 설명한 거라 보면 된다.
물론 Esping-Anderson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유형화 했다. 하지만 Esping-Anderson의 세 가지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거 같다. 물론 같은 유형의 국가들 안에서 차이점은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큰 틀 안에서 이러한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면 이쯤에서 드는 질문 하나.
" 한국은 어떠한 유형에 속하는 것인가?"
자유주의 유형인가? 보수주의 유형인가? 사민주의 유형인가?
Esping-Anderson은 자신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아직 발전 중인 국가이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 어딘가 쯤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다.
한국의 복지국가 역사는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아주 짧다. 보통 복지국가의 역사는 자본주의 혹은 민주주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자면, 한국의 복지국가 역사는 상당히 짧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복지국가 형태가 아직 발전 중이라는 Esping-Anderson의 말은 어느 측면에서는 맞는 말 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연 한국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 어딘가쯤에 서 있으며, 향후 어떻게 발전하는냐에 따라 자유주의로 갈지 보수주의 유형이 될지 정해 질 수 있다는 말에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복지제도 유형이 잔여주의 성격이 강한 자유주의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고, 사회보험의 성격이 강한 보수주의 유형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 외의 의견들도 있다.
나는 여기서 이들 중 누구의 의견이 맞고 틀리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주장을 듣고 있자면, 다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혼합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학계의 다양한 주장들의 타당성과 한계점이 아니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왜 한국은 자유주의 유형이든 보수주의 유형이든 혹은 스웨덴과 같은 사민주의 유형이든 유럽이 거친 경로 중 하나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국가들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복지국가들이 있다.
앞서 말한 Esping-Anderson 의 유형론에 속한 국가들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다양한 정치체제를 경험한 국가들이다. 즉. 이 국가들은 최소한 70~100년에 걸쳐 복지국가를 만들어온 국가들이다. 산업 혁명 이후 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의 복지국가 초석을 다진 국가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광복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기간은 길어야 고작 60여년 남짓이며, 민주주의 역사는 그 보다 짧다. 그리고 우리가 복지국가 혹은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고작 20여년 남짓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복지국가들이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구사하던 시기 우리는 경제개발도상국에 진입을 위해 전국민이 달리던 시기였다. 당연히 민주주의는 먼 이야기 였고, 복지국가라 함은 국민 대다수가 모르던 그런 시기였다.
한국 복지의 역사는 이처럼 짧고 현재 복지국가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복지의 시작과 유럽의 시작은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시기, 다른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세계를 둘러싼 상황도 달랐다.
유럽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 함은 결단코 우리의 모습이 나쁠거라 비관하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이야기 하는거지 뒤 떨어지거나 나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에 있으면서 들었던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 한국이 스웨덴 처럼 될 수 있을을까요?" 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분들의 의중에는 한국이 스웨덴처럼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와 또 한편으로는 한국이 스웨덴처럼 되기 힘들거라는 푸념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스웨덴 정책들 중 좋은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육 정책과 노동정책 그리고 가족정책은 부러운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한국은 스웨덴처럼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스웨덴은 이들 나름의 문화와 역사를 통해 현재 제도를 갖춰왔다.
길게는 100여년 넘게 걸쳐 현재 모습을 갖춘 제도도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이들은 본인들의 자연과 문화에 맞는 제도라는 옷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옷이 우리에게 어울릴 수 있을까?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돈다지만, 옷에도 유행이 이라는 것이 있어서,
유행에 맞게 옷을 수선할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옷을 살 수 도 있다.
하지만 본래 내 몸에 맞는 옷이 맵시가 나는 법이며 가장 편한 법이다.
유행도 내 몸에 어울려야 멋이 산다.
내 몸에 맞게 옷을 수선이 필요 할때도 왕왕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도 스웨덴의 제도를 혹은 다른 여러 국가들의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북유럽 모델이 되는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북유럽 모델도, 자유주의 모델도 서유럽 모델도 아닐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정책들이 다 좋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 왔다.
실제로 현재 우리가 가진 많은 사회복지정책들 중 우리만 가진 특징적인 것들이 많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그렇다.
유럽에 나와 본 사람은 특히 미국에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얼마나 좋은지 말이다.
우리가 가진 제도 중 외국에서 가져온 것들도 많다. 특히 사회보험이나 굵직 굵직한 사회복지 정책들은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제도들은 이들과 다르다. 우리에 맞게 수선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의 몸에 맞는 옷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물론 우리의 몸이 균형이 잘 잡힌 몸 일수도, 그렇지 않은 몸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몸에 맞고 유행도 고려해 옷을 만든다.
물론 몸이 성장하거나 형태가 바뀌면 옷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게 수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계속 수선만 해서 옷을 입을 수는 없다.
우리도 우리에게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우리가 걸어온 길은 서구 유럽과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우리의 수준이 절대 뒤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1년전 나는 우리나라가 스웨덴처럼 되기를 소망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왜 꼭 우리가 스웨덴처럼 되어야 하는지 삐닥하게 딴지를 걸어본다.
그리고 한국은 한국형 복지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후에 사회복지 역사 시간에 해당 제도의 시작이 영국이나 스웨덴, 독일이 아닌
대한민국이라 이야기 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