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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Oct 03. 2017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나라

스웨덴의 Kulturskolan(문화 학교)

 한국의 공교육은 무너질 때로 무너졌어요.

우리 아이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스웨덴에 잠시 살고 있는,

그리고 내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 단호함에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울 정도다.


"정말, 한국 교육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거에요?"

"언니, 그럼 언니는 한국의 공교육이 지금 정상이라고 보세요? 아이들 학원비가 데체 얼마나 드는지 알아요?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고.....아이들이 학원 끝나고 집에 몇시에 들어오는지 알아요?"


내 질문에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띄고 반문하는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 안에서 지쳐가는 한국 학생들에 대한 잡지 기사


우리 아이는 작은 중소도시에서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항상 아이가 학교를 가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이 나에게 작은 낙이라면 낙이었다.

가끔식 아이가 학교 가다 말고 뒤 돌아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학교 안으로 다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항상 베란다에 서있곤 했었다.

그렇게 4학년 1학기까지 그 학교를 다니다 여기에 왔다. 특별히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다. 물론 남편과 아이가 5학년이나 6학년 정도가 되면 영어 학원 정도는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상의를 하곤 했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고민 중 하나였다. 저학년까지는 어찌어찌해서 학원을 보내지 않고 버텨왔지만, 고학년이 되면 학원을 그래도 영어라도 보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 학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엄마들 사이에 이름이라도 있는 학원이라 치면 학원비는 보통 동네 영어 학원 보다 더 높았다. 아이가 한명 있는 우리도 학원비가 걱정인데, 아이가 두명이나 혹은 세 명을 키우는 부모들은 학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싶었다.


" 그래서 내가 이 직장을 그만 둘 수 없는거야..."

다른 지역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있는 아는 언니의 말이다. 아이 학원비 때문에 일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푸념을 한다. 본인이 그만 두면, 아이 학원도 그만 둬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을 거란다.

"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칠 수는 없잖아..."








그런데 문제는 학원비가 국, 영, 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란다.

더 큰 문제는 요새 아이들은 예체능도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어느 정도 학원비가 평준화(?)되어 있는 국, 영, 수 과목에 비해, 예체능 학원비는 가격차도 둘쑥날쑥하며, 학원비가 상당히 비싸다는 것이다.


맞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예능 특히 악기를 배우는 것은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우리 형제들에게 절대 예능쪽은 시키지도 못하니 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우리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우리 삼형제에게 예능적인 재능은 단 1%도 발견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연인지 이 글을 쓰는 날 아침, 교과목 사교육은 줄어들었지만, 예체능 사교육은 증가하고 있으며, 예체능 사교육비의 계층 간 차이가 증가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교육은 많은 국가들에서 계층간 이동의 주요 열쇠로 여겨진다.

이 말은 교육을 통해 부모의 계층적 지위가 자녀에게 세습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빈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보편적인 공교육을 통해 , 부모의 빈곤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 이러한 계층 이동의 순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보편적이고 의무적인 공교육 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공교육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교육은 여전히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을까?

답은, 그러한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고, 계층 이동의 순 기능 역할을 하는 국가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오히려 교육이 계층의 고착화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은 부모의 계층적 지위가 높은 아이일 수록 학습 능력과 교육 성취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강하고,

더 이상 교육을 통해 사회의 계층 이동이 빈번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발견되는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교육이 계층의 양극화와 계층화를 고착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국가들이 유럽 안에서는 영국이 속하고, 미국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도 이러하다. 거기다 한국은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국가 들 중 대표적인 국가들이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계층 이동을 촉진 시키는 이러한 국가들 안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문화적인 유산이다. 고소득층 혹은 고학력 부모가 향유하는 문화적인 세습 혹은 문화적인 배경까지 차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교과목의 교육은 공교육을 통해서 보편화와 평등화를 이루고 있지만, 부모와 같이 떠나는 여행, 독서 습관, 문화공연 관람 혹은 문화와 체육에 대한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투자는 계층간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두 평등한 우리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다양한 계층적 배경에 의해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생활과 문화적 교육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아동 초기 부터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지점을 사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는 절대 간과하지 않았다.


문화적인 교육, 악기를 배우고, 특정 체육을 배우는 것이 단지 일부 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교육이고, 그들의 문화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스웨덴의 대답이고,

바로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스웨덴은 바로 '문화 학교'라는 것이 있다.



문화학교 팜플렛


일명 'Kulturskolan',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문화 학교 정도가 될 것이다.

문화학교는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학기 초에 접수를 받는다.

여기에서 배워주는 과목은 상당히 다양한데, 악기(피아노, 플롯, 트럼펫, 섹스폰, 첼로, 오보에, 하프, 리코더, 바이올린, 기타 드럼 등), 미디어(애니메이션, 사진, 영상 촬영, 편집 등), 연극(뮤지컬, 연극, 드라마, 서커스 등), 댄스, 미술(소묘, 수채화, 유화, 조각, 만들기 등) 등 이것 외에도 상당히 많은 종류의 과목들이 있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 되는 장소는 각 지역(우리로 치자면, 동마다 있다고 보면 될거 같다)에 있다. 수업을 접수할 때 부모들은 본인들의 학교 근처 혹은 집 근처에 있는 문화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특정 프로그램이 배우고 싶으면, 지하철로 움직여야 하는 거리를 다니기도 한다.


현재 우리 아이 역시 피아노와 플롯을 배우고 있다.

플롯의 경우 아이 학교 근처에서 배울 수 있지만, 피아노의 경우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문화학교에서 운영되는 반의 정원은 과목에 따라 다양하지만 , 악기 과목을 기준으로 본다면, 주로 한 반당 2~4명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문화학교 비용은 어떠할까? 한 과목의 비용은 일주일에 한번(30분을 기준) 배우는 것을 기준으로 한 학기 비용이 350kr정도(한화로 약 5만원 내외이다)이다. 물론 시간을 연장하는 경우 가격은 올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은 부모의 소득에 의해 달라지는데, 부모의 소득이 낮은 경우, 3 과목 까지 한학기 비용은 350kr정도이다.

비용도 상당히 저렴할 뿐 아니라, 악기 역시 아주 저렴함 비용에 대여가 가능하다. 현재 우리 아이는 플롯을 대여해서 배우고 있는데, 대여하는 악기라고 저렴하거나 상태가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학교는 만 22세까지 저렴함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예능 교육 뿐 아니다.

스웨덴은 많은 곳에서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클럽이 있다.

그 비용 역시 상당히 저렴하고, 고학년의 경우 학교에서 체육에 대한 클럽 활동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워낙 아이들의 신체 활동에 대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무료로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농구, 축구, 수영 등을 배운다.


예체능의 사교육비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우리와 사뭇 비교되는 현실이다.



스웨덴에서든 한국에서든 엄마들을 만나면, 의례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교육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엄마들이 한국의 공교육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들을 만나면 나의 머리 속은 더 없이 어지러워진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문제는 교육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갖고 있는 경쟁, 이기주의, 경멸과 조롱 그리고 차별과 연관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더 없이 혼란스럽다.

그래서 이들이 본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대안적인 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대안 학교가 우리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대안학교를 폄하 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다양한 교육 방법 역시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교육이 바로 서지 않는 상황에서 대안학교는 일부 계층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공교육 현장 안에서 평등하고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그래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순기능을 상실 했다면,

사교육 시장은 더 이상 통제 기능을 상실한채 미친듯 날뛸 것이며,

대안 학교는 대안이 아니라 이러한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단지 소수 만을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공고육이 무너졌다고 단언하던 엄마는 가고,

나는 카페에 앉아서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스톡홀름의 가을이 깊어진다. 여기에서 두번째 맞이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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