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너의 삶을 살아라

시골박사의 정책이야기 네번째, 노동의 상품화와 탈상품화

by 윤승희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시다. 어느 날 저녁 그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 윤선생님, 전 요새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들고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이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살아보니 본인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더라는 것이다.

JTB 뉴스를 봤다. 대한민국을 떠나고자 하는 이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대한 이야기였다.

대기업을 다니는 30대 초반 회사원, 졸업후 취업을 포기하고 이민 준비 동호회를 들어간 20대 후반의 젊은이들.... "왜 이민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그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직장 잡기가 어려워서, 아무리 일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 않아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노후 보장을 위해서....

그 중 한 30대 남성분이 이런 대답을 했다.


" 왜 이민을 가려고 하냐고요? 저는 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는 제 삶을 살 수 없을거 같아서 떠나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이 땅을 떠나고자 한다는 그 남성의 목소리가 쉽게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동안 개별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의 주제는 인간 노동의 탈상품화에 대한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일찍이 마르크스 (K. Marx, 1818~1883)가 지적한대로,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시장에서 노동력을 파는 대가로 임금을 받고, 이 임금을 가지고 인간의 기본적인 복지수요 (의, 식, 주 및 교육, 의료 등)를 해결했다. 이를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 (commodification)라고 부를 수 있는데, 노동력의 상품화란 쉽게 말해서 고용되는 것, 일을 하는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탈상품화 (decommodification)는 상품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노동자가 시장의 임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회적 급부를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며 말이다. 물론 혹자는 임금을 받아도 인간다운 생활 하기가 턱 없이 부족한데 임금을 받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코웃음을 칠 수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이다.

실제로 탈상품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국가들이 아주 많이 있으니 말이다.


상품화와 탈상품화는 사회정책 학자들 사이에서 해당 복지국가의 성격과 정책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주요한 척도가 되는 개념들이다. 일례로' 어떠한 국가의 복지수준이 탈상품화가 높다'라는 것은 해당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수준의 정도가 높고, 보편적인 정책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북유럽 국가들(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과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이 될 수 있다. 즉, 탈상품화의 개념은 허구도 아니고 어느 망상가의 상상도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자, 상품화와 탈상품화, 이 두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결이 인간의 존엄성 마저 집어 삼킨 1800년대 유럽으로 잠시 우리의 시선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솔직히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는 자본주의 체제 이전에도 있었다. 인간의 노동력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교환의 대상이었고, 생계유지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토대로 나타난 인간 노동의 상품화는 그 이전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잠시, 공산당 선언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그렇지만 편향된 시선으로 잘못 인식되어진 칼 마르크스의 말을 잠시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1844년 그는 자신의 책(Notes on James Mill)에 이렇게 당시 노동자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 12시간 동안 천을 짜고 실을 뽑고 구멍을 뚫고 선반을 돌리고 집을 짓고 따을 파고 돌을 깨고 짐을 나르는 노동자- 이 노동자에게 이 12시간 동안의 옷감짜기, 실 뽑기, 구멍 뚫기, 선반작업, 집 짓기, 삽질, 돌 깨기 등이 자기 삶의 발현이자 삶으로 여겨지겠는가? 그와 정반대이다.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이러한 활동이 멈출때, 즉 식탁에서 선술집 의자에서 침대에서 시작된다. .......”(K. Marx,, 1844)




1840년대 당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대부분 12시간을 넘었으며, 12시간의 노동을 통해서 받는 임금은 턱 없이 낮았다. 이 당시 노동자들에게 본인의 삶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마르크스는 당시 유럽의 노동자들의 삶을 보며, 자본주의에 의해 인간 노동력의 소외라는 관점에서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노동이 어느 순간 삶의 즐거움 혹은 삶의 과정이 아니라 노동자를 삶에서 소외시키는 것으로 노동의 목적이 변질 되었음을 비판한다. 노동자의 노동이 ‘자신의 삶의 행위’속에 포함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희생’ 하게 하는 것이 되어버린 현실, 이것이 바로 1840년대 유럽의 모습이었다.


당시 마르크스는 탈상품화라 명명된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상품화에 대응하는 반대의 개념에 대한 것을 삶과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된다.


"삶이란 이러한 활동이 멈출때, 즉 식탁에서 선술집 의자에서 침대에서 시작된다" 이 대목을 보면 칼 마르크스가 상품화와 이 상품화를 멈추는 지점(탈상품화)이 온전한 노동자의 삶이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날 때만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된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더 힘든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모순된 순간에 놓이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자신의 이념적 철학적 사상을 유럽 사회에 널리 전파하게 된다.


물론 마르크스강력하게 맏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해 잠식 당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그 어느때 보다 더욱 발전하였다.


하지만 인류는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며, 그 대안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해체를 통한 사회주의가 아닌 복지국가였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은 복지국가의 건설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복지국가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위험에 대한 대응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바로 탈상품화였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탈상품화 정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여러 가지 휴직제도, 여러 가지 수당제도 등이 바로 탈상품화 성격을 갖고 있는 정책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자본주의라는 시장에서 밀려 날 수 있다. 만약 내가 질병에 걸렸다면(의료보험), 내가 일하다 다쳤다면(산재), 내가 임신을 하거나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출산 혹은 육아 휴가), 내가 직업을 잃었다면(실업수당 혹은 실업보험), 내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나의 노동력이 상품화 가치가 떨어진다면(연금)....과연 나의 삶의 어떻게 될 것인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 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어 버린다면, 인간의 삶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공장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복지국가가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며, 상품화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 노동은 자유로운 표현이고 따라서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나의 노동이 나의 삶이 될 수 있을 때, 노동을 통해 나의 개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노동은 참되고 활동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Marx, 1992;278).”


참된 노동은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본인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노동은 우리 삶에 중요하다.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은 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노동력의 상품화는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정부들이 실업율을 낮추고, 고용율의 높이는데 온갖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상품화'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면이다. 실업자들에 대한 직업훈련 교육, 고용 부흥책, 고용 환경 개선 정책 등이 상품화 정책의 예라 할 수 있다. 즉. 현대 복지국가는 '진정한 상품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이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게하는 '진정한 상품화'말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우리 노동의 현실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소중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본연의 삶을 누릴,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며, 우리는 삶을 살고자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존엄성은 자본주의 가치에 의해서 매겨져서는 절대 안 된다. 노동 시장 안에서든 혹은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절대로 인간적인 존엄성을 잃어 버려서는 안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의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탈상품화'이다.


젊은이들이 이 땅을 떠나고 싶 한다. 자신의 삶을 살고자 이 땅을 떠나고 싶 한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려고, 혹은 출세를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떠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평등한 삶을 살기 위해, 나의 삶의 살기 위해, 지극히 소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 땅을 떠나려 한다는 것이 슬프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그리고 저급한 자본주의에 희생되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위해 움직일 때이다.


문제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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