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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21.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30>-소공지례昭公知禮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君取於吳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人必知之

진사패문 소공지례호 공자왈 지례 공자퇴 읍무마기이진지 왈 오문군자부당 군자역당호 군취어오위동성 위지오맹자 군이지례 숙부지례 무마기이고 자왈 구야행 구유과인필지지


-진나라의 사패가 물었다. "소공은 예를 압니까?" 공자가 말했다. "예를 압니다." 공자가 나가자 무마기에게 인사하며 다가와 말했다. "저는 군자가 편당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군자도 그렇게 하는가 보죠? 임금이 오나라 여자와 혼인하는 바람에 동성이 되자 오맹자라고 불렀습니다. 임금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무마기가 고하자 공자가 말했다. "나는 행복하구나. 구차하게 잘못을 저지르면 남들이 반드시 알려주는구나."     



주나라는 희창姬昌(문왕文王)의 아들 희발姬發(무왕武王)이 세웠지요. 노나라는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을, 진나라는 문왕의 백부 태백泰伯을 각각 시조로 하니 두 왕실은 모두 희씨 성을 썼습니다. 진나라 사패(오늘날의 법무부 장관)의 예에 대한 질문은 이 점과 관련 있습니다.


노나라 임금 소공과 결혼하는 오나라 여인은 관례대로 오희吳姬라고 불려야 합니다. 동성 간의 혼인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소공이 왕비의 이름을 바꿔 버린 것이지요. 진나라 관리는 당신네 임금이 명분 없는 짓을 했으니 예에 어긋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공자 면전에서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공자의 제자 하나를 붙들어 까칠하게 굴고 있습니다. 공자의 독백을 통해 우리는 공자가 예에 어긋난 임금을 욕하는 무례를 저지를 수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지요. 진나라 관리의 질문은 공자에게 일종의 함정과 같습니다. 어떻게 답변해도 욕을 먹지 않고는 빠져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만일 공자가 "부지례不知禮"라고 답했다면 그는 무마기에게 이렇게 말했겠지요. "아니, 아무리 임금이 예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손치더라도 신하된 도리로 어찌 그렇게 말한단 말입니까? 심각한 불충 아닙니까?"


공자는 나름 쿨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공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공을 상대에게 넘겼어야 했습니다. 


외도外道가 부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말할 수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묻지 않겠다는 당돌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경지를 보여 봐!'라고 나름 패기 있게 달려든 셈이지요. 말도 섞지 않고 침묵으로 회피하지도 않은 채 부처는 그저 여여如如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외도는 깨달음의 자비를 베풀어 준 부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공손히 물러갔지요. 당시 부처를 시봉했던 아난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궁금해서 묻자 부처의 대답이 일품입니다.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린다." (<<금강경>> 주석서 중 하나인 <<금강경오가해>>에는 '양마 견편영이 추풍천리 良馬 見鞭影而 追風千里 -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천리를 바람처럼 달린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외도는 부처가 쥐고 있던 깨달음의 채찍 그림자를 본 것이지요. 그는 훌륭한 자질을 가졌던 사람인 것입니다. 말에 함정을 판 채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긋이 앉아 미소 지을 수밖에 없지요. 인사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뿐입니다. 


궤변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정치판을 바라보면 자괴감이 듭니다. 채찍의 그림자는커녕 채찍을 맞아도 잠시 잠깐 엎드려 읍소할 줄만 아는 자들에게 표라는 먹이를 끊임없이 던져 주는 절반의 국민들은 언제쯤 그들이 파 놓은 말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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