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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20.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29>-인지仁至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자왈 인원호재 아욕인 사인지의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다고? 내가 인하고자 하면 인에 이르게 된다."



공자孔子와 자子가 섞여 쓰일 때를 제외하고는 '자왈'을 본래대로 '공자가 말했다'라고 풀이하겠습니다.


이 구절은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연상케 합니다. 인이 비록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은 맞지만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아주 간단히 압축하여 공자의 인을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정의한다면, 사랑하겠다는 발심發心이 곧 인의 시작이며 사랑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인한 사람이 된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이란 <<천자문>>의 '인자은측 조차불리 仁慈隱惻 造次弗離 - 인자함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잠시라도 떼어놓지 말라'의 정신을 늘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같지요.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면 왜 우리는 마음을 먹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마음이란 과연 먹을 수 있는 것인가를 사유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인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던지며 속삭이는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인지에 대한 여부는 말을 하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평가 지표라고 해봐야 기껏 그 속삭임을 들은 상대의 느낌이나 거짓말 탐지기가 보여 주는 결과 정도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것들의 객관성은 담보되지 않습니다. 즉, 내가 타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의 진실 여부는 언제나 타자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하면 나 역시 타자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해'라는 나의 말에 연인이 '거짓말,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당혹감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타자에 의해 재구성된 나의 마음과 내가 확신하는 나의 마음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인지 증명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진심 어린 고백을 완강히 부정하는 연인에게 실망하여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연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분노를 표출한다면, 연인에 의해 재구성된 나의 마음은 내가 확신하는 나의 마음을 밀어내고 나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등극합니다. 이 순간 마음이란 실체가 아니라 그저 재구성된 대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와같은 마음의 재구성은 타자들과의 관계를 통하지 않더라도 늘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태입니다. 사물과 사람, 관념은 우리의 바깥에 대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대상들을 우리의 안으로 끌어들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재구성되고 맙니다. 이쯤 되면 우리의 마음은 주체가 아니라 외부의 영향 아래 놓인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내 안에 들어 있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던 거의 유일한 실체인 '마음'이라는 것이 실상은 아무나 쥐고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허상에 다름 아니었던 셈입니다. 


결국 마음먹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허깨비를 붙들고 의미를 부여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지요. 연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과 인해져야겠다는 의식조차 없어야 합니다. 마치 잠을 자고 있을 때 내가 자고 있음을 인식하는 작용 없이 그저 잠을 자는 행위만이 일어나는 것처럼, 연인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행동 외의 그 어떤 의식도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보살은 보살행으로 되는 것이지 보살 정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생과 서민을 백날 떠들어 봐야 부자와 대기업 감세, 민영화 추진, 노인 공공 일자리 축소, 복지 예산 감소 정책을 밀어붙이는 한 국민을 위한 리더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먹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마음을 먹는데 소진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몸으로 움직이는데 써야 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 배설하기를 반복하는 대신 그냥 읽고 쓰면 됩니다. 몸이 알아서 읽고 알아서 쓰도록 말이지요. 


인하게 살면 인한 사람이 됩니다. 안회의 비결은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공자의 위 말을 듣고 인하고자 했을 그의 제자들은 인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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