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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24.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33>-제자불능학弟子不能學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자왈 약성여인 즉오기감 억위지불염 회인불권 즉가위운이이의공서화왈 정유제자불능학야


-공자가 말했다. "성과 인이라면 내 어찌 감히 그렇겠느냐? 삼가며 그렇게 되기를 싫어하지 않고 타인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바로 그 점을 제자들이 따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표현들이 들어 있습니다. <술이> 편 2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子曰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자왈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 - 공자가 말했다. "묵묵히 쓰고, 배우는데 싫증내지 않으며, 타인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나에게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자신은 아직 성인聖人이나 인자仁者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고 공자는 말합니다. 다만 그 경지를 향해 노력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가 이 구절에서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활연대오豁然大悟했다고 선언하는 선승들의 당당한 기백에 비하면 아무래도 밋밋하지요. 겸손이라면 우리는 <<주역>> 열다섯 번째 괘인 '지산겸괘地山謙卦'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거산巨山 같은 존재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땅속에 묻힐 정도가 되어야 겸손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가난은 정신병'과 같은 카피를 내건 광고를 찍으면 안 됩니다. 설사 빈곤이라는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고의적 자극을 주기 위해 극악의 선정성을 활용한 것이라 해도 방법이 그릇되었습니다. 모두가 부자로 살아가는 사회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상스럽기도 합니다.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이 현재까지 인류가 구현한 현실적 이상향입니다. 국가를 대신해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 신묘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런 무도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현인도 모든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강자가 되었을 때 증명됩니다.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자신만의 성공 경험을 절대적인 것인양 부각시키며 호도하는 사람들의 말과 글은 겸손이 얼마나 어려운 덕목인지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명약관화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온 국민을 청각 장애자와 매국노로 몰고 가는 것과 다름 없는 저열한 방법을 택한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파렴치한 언사들은 강자의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자들의 부박한 영혼 수준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우리는 겸손하지 않은 강자들로 하여금 우리들을 대표하게 하는 멍청한 짓을 더는 저지르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겸손은 약자의 미덕이고 그 약자는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공서화의 말에서 근기 약한 제자들의 면모를 보게 됩니다. 제자들의 나약함은 공자의 지나친 겸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 없고,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없지요. 제자는 스승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되고, 스승을 흉내내며 모방해서는 더욱 안 되며,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승의 가르침 이상을 깨닫고자 용맹 정진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성自性을 깨달으면 견성見性할 수 있다는 불교적 가르침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자고로 스승이든, 신이든, 법사든, 대통령이든, 사장이든, 인간을 노예화하는 존재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나란히 앉을 수 없는 자들은 본래 겁이 많습니다.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당한 한 인간으로 서서 말할 용기가 없으니 돈과 권력, 신분과 권위를 앞세워 헛소리들을 합니다. 참으로 불쌍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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