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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07.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8>-성어락成於樂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자왈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공자가 말했다. "시에서 감흥하고, 예에서 정립하며, 음악에서 완성한다."



'흥興'을 '일어나다', '입立'을 '서다', '성成'을 '이루다'와 같이 풀이하면 뜻의 모호함을 걷어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각 감흥感興, 정립正立, 완성完成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공자는 시를 중요시했습니다. <학이> 편 15장에서 '절차탁마'를 인용하는 자공에게 "이제부터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始可與言詩已矣)'라며 좋아했습니다. 아들 백어를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으나 "시를 아느냐?"고 물으며 시 공부의 필요성을 일깨우기도 했지요. 


<위정> 편 2장에서 공자는 <<시경>>의 정신을 '사무사思無邪 - 생각에 거짓이 없다'라고 압축한 바 있습니다. <<담론>>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강녀孟姜女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맹강녀는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동원되어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아갑니다. 겨울옷 한 벌을 지어서 먼 길을 찾아왔지만 남편은 이미 죽어 시체마저 찾을 길 없습니다. 당시에는 시체를 성채 속에 함께 쌓아 버렸다고 합니다. 맹강녀는 성채 앞에 옷을 바치고 사흘 밤낮을 통곡했습니다.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尸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옷을 입혀서 곱게 장례 지낸 다음 맹강녀는 노룡두에 올라 바다에 투신합니다. 맹강녀 전설이 사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쪽이 진실인가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설 쪽이 훨씬 더 진실합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입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시적 감흥이란 곧 시라는 장르가 갖는 초월적 진실성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적 사실을 빙자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 기사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슴을 두드리는 진정성이 시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정립正立은 바로 서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욕설과 고교생의 카툰에 대해 보이는 대통령 본인 및 참모들,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의 작태는 인간이 무례한 한 결코 바로 설 수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생각이 없거나 있어도 비뚤어져 있기에 무례한 언행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입어례'라고 말한 공자의 통찰은 정확하지만 심오한 것은 아닙니다. 기차 안에서 맞은 편 좌석에 아무렇지 않게 구둣발을 올려 놓은 장면을 담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우리의 위대하신 리더는 스스로 본인이 예의 없는 사람임을, 그래서 바르게 설 수 없는 사람임을 진솔하게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이지요. 그래도 찍어 주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기꺼이 발등을 찍어 버릴 수밖에요. 하늘이 내린 위대하신 우리의 리더는 자신을 찍어 준 국민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계실 뿐입니다. 


공자 시대의 시와 예, 그리고 악은 형식성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위 구절에서는 이것을 읽어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는 절제된 형식 안에서 인간 개인의 정서를 함양합니다. 예는 개인과 개인이 관계할 때 지켜야 할 자세와 태도를 규정하는 형식입니다. 시의 사회적 확장 버전이 예인 셈입니다. 즉, 시로 함양된 정서를 보유한 개인만이 예로 타인을 대할 수 있다는 인식인 것입니다.     


음악이야말로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 주는 장르입니다. '성어락'은 개인이 음악을 통해 교양이나 도덕성을 갖추게 된다는 소극적 개념이 아닙니다. 음악은 시와 예를 아는 고매한 인간과 인간을 마침내 하나로 화합하게 해주는 형식의 최고봉인 것입니다. 악樂은 곧 락樂이니 음악은 대동大同의 상징인 것이지요.  


정치야말로 음악적입니다. 어떤 말을 해도 정부가 신뢰 받지 못하는 이유는 리듬과 박자가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개차반으로 연주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지 않는다고 성질내는 밴드를 보는 기분입니다. 형식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요란한 장단에 막춤을 추느니 가만히 영화 대사 하나를 읊는 게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부실의 폭탄이 올해는 터질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리스크가 없는 투자는 존재할 수 없겠죠? 이 투자의 유일한 리스크, 바로 정부의 개입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절대 알리지 않을 겁니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미 나오고 있는데도 그 새끼들은 모른척하고 있거든요. 라디오조차도 지금 국가부도가 시작됐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능하거나, 무지하거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그 무능과 무지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 20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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