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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4.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12>-부지어곡不至於穀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자왈 삼년학 부지어곡 불이득야


-공자가 말했다. "삼 년을 학문하고도 곡에 이르지 않기란 쉽지 않다." 



공부에 있어서 삼 년은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공부에만 매진한다면 괄목상대할 만한 성과를 내는데 충분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삼 년을 굳이 '막연히 긴 동안'이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3이라는 숫자 자체가 '관계 맺음에 의해 촉발되는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작의 결과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시간 흐름을 상징하는 십천간十天干(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을 숫자 순서대로 배열하면 '임정갑신무계병을경기'가 되고, 임(1)과 정(2)이 합하면 갑(3)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끊임없는 순환적 변화를 통해 생기와 생명이 지속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뜻하는 '정임합壬合=갑甲'이라는 도식으로 표현되며 그 자체로 우주의 원리입니다. 명리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삼 년이란 나와 공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로 환골탈태하는데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인 것입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생활비를 버는데 소요될 시간과 노력을 아껴 공부했으니 형편이 넉넉하기 어렵습니다. 인내하며 힘들게 한 만큼 공부를 부와 명예라는 현실적 성과로 연결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그렇기에 공자는 위와 같이 말합니다.  


곡穀은 곡식이요 여기에서는 국가로부터 받는 녹祿의 개념입니다. 곧 벼슬이지요. 따라서 녹에 이른다는 것은 벼슬에 생각이 미치는 것이고 마음이 향하는 것입니다. '부지어곡'이니 '벼슬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불이득'이니 그런 마음 상태에 이르기란 어렵다는 것이지요.    


공자는 학문의 목적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 구절을 소위 '삼 년을 공부하고도 출세에 뜻을 두지 않는 제자를 얻기란 쉽지 않다'와 같이 해석하는 것은 사유의 깊이를 덜하고 맙니다. 그래서 곡穀이라는 글자가 의미심장한 것이지요.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현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학문을 상징합니다.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문은 좋아서 해야 하는 것(호학好學)이요 학문한 자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지식과 지혜를 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상 학위를 위조하는 중범죄를 저질러도 유야무야되는 '죽은 학문의 시대'일지라도 몇몇은 공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입니다. 소수의 뜻이 세상을 바꿔 갑니다. 그것이 의義에 부합하는 한 말입니다. 바뀐 세상에서 껍데기만 학자인 비겁한 자들은 발붙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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