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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7.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13>-수사선도守死善道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공자가 말했다. "독실한 믿음으로 호학하고 죽을 각오로 선도하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물지 말라. 천하에 도가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고 도가 없다면 감춰라. 나라에 도가 있는데 빈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귀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공자는 먼저 '호학'과 '선도'에 대해 얘기합니다. 호학은 배움을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의 전제로 '독신'을 제시합니다. 학學의 대상인 과거의 텍스트 곧 성현들의 지식과 지혜가 담긴 경전들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공부의 대상을 의심하면서 공부하기를 좋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선善에는 '잘알다, 통달하다'의 뜻이 있으니 '선도'는 곧 '도를 깨닫다'의 개념입니다. 그 방법으로 '수사'를 말합니다. 수守는 '지키다'의 의미이니 '수사'는 '죽음을 지키는 것'이요 이를 달리 말하면 '삶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즉, 수사는 '죽을 각오로, 목숨을 걸고' 정도의 뉘앙스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위방불입 난방불거'는 춘추시대의 중국이기에 가능한 조언입니다. 나라를 '조직' 정도로 바꾸면 현재에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은 <<주역>> 12괘 천지비괘를 연상시킵니다. 불통과 폐색의 시절에는 소인들이 군자들을 핍박하기 마련이지요. 공자는 천지비괘의 <대상전>에서 '검덕피난儉德辟難'하라고 충고합니다. '자신의 덕을 숨김으로써 어려움을 피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무도한 세력을 견제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갖춰져 있고 각성된 민중이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꼭 맞는 도움말은 아닙니다. 작금의 현실은 국민적 저항과 투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 지라도 또다시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드골의 말입니다." 나치 부역자 6,763명을 사형에 처하고, 26,529명을 감옥에 가둔 프랑스 역사의 자긍심이 느껴지지요. 프랑스는 정치인, 언론인, 작가, 시인은 가중 처벌했습니다. 사회에서 존경 받고 영향력을 가졌던 만큼 그들의 변절과 친나치 행각은 더 큰 폐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전범 추적과 처벌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부럽고 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혼란스러운 세계 상황을 틈타 제국주의 일본의 야욕이 되살아나고 있는 이때 이 땅에서도 다시 친일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달리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탓이지요. 나라에 도가 없을 때 친일을 수단으로 부귀를 누렸던 자들을 단죄하지 못했기에 나라에 도가 있어도 빈천하게 살아가야 했던 독립 유공자들의 자손들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릅니다. 


이 치욕스러운 역사로 인해 나라의 도는 무너지기를 반복합니다. 독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자위대 군함들이 욱일기를 휘날리는 한심한 이 시대의 모습에는 국민의 책임이 큽니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필요하다는 응답(49%)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44%)을 넘어서는 결과를 보며 이 땅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세계 군사력 6위의 위상도 리더가 무능하고 국민이 어리석은 한 이 나라의 평화를 지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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