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1.중천건괘重天乾卦>-괘사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라.

by 오종호

<들어가는 말>


동양 최고의 고전이라고 평가 받는 <<주역>>은 누구나 한 번쯤 공부에 뜻을 두지만 그 뜻을 끝까지 행동으로 이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책입니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한 번 읽고 마는 일반적인 책들과 달리 곁에 두고 날마다 꾸준히 매우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는 공부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옛날 윤리책이나 타로나 점성술 같은 단순한 점서占書처럼 인식하는 선입견도 주역 펼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한 요인입니다.


주역 공부에 입문하면 거의 예외없이 야산 이달 선생님의 제자인 대산 김석진 선생님의 <<대산주역강의>>와 만나기 마련입니다. 많은 학자와 현인이 해설한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주역 공부에 있어서는 바이블과 다름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의 가치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책 앞에 앉는 사람에게만 서서히 다가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뜻이 쉽게 잡히지 않아도 하루 한 괘씩 반복적으로 읽어 나가라는 조언을 사람들은 지키기 어려워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시간이 부족하고, 일하고 나면 피곤하며, 휴식 시간에는 해야 할 다른 일들과 읽어야 할 다른 책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64일 동안 내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웬만한 공부는 책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끝날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주역 공부를 지속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효용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어학원 다니는 것처럼, 토익공부하는 것처럼 실력이나 성적으로 가시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어도 안 읽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지니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 공부의 미덕은 공부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공부 시간이 누적되면서 차츰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주역 하면 가장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주역 해설서를 펴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 수록된 성공회대 강의록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신영복 선생님의 주역 강의의 전부입니다. 그 내용이 워낙 좋기에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주역에 입문하려는 분이라면 위 책의 3장 '주역의 관계론'을 통해 주역 전체의 구성과 의의를 조망하는 것이 크게 도움될 것입니다.


젊은 시절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읽었던 주역과 달리 나이 들면서 진정한 공부의 입장에서 마주한 주역은 매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명리학 공부가 깊어질수록 주역의 텍스트가 매번 새롭게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대가들의 많은 주역 해설서가 세상에 있음에도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깊은 주역 공부에 도움이 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주역 해설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공자 이후로도 수많은 학자들이 주역에 대한 해설서를 썼습니다. 여전히 많은 연구가 지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제 눈에 기존의 주역 해설서들은 지나치게 압축되어 주역의 본질과 멀어졌거나, 방대하지만 원문과 해설을 읽어도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대성괘 안에서 효와 효 간의 관계와 그 변화를 통해 주역 텍스트의 본뜻을 논리적으로 추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주역의 언어와 최대한 담백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가능한 한 현대적인 감각으로 주역에 접근하였습니다. 괘사와 효사를 중심으로 하되 공자의 '십익' 중 <단전>과 <대상전>, <소상전>을 모두 포함하였고, 괘사와 효사의 이해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필요 시마다 함께 다루었습니다. 공자는 주역이 오늘날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데 가장 크게 기여한 ‘브랜드’이자 수많은 주역 독자들이 책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사전답사한 가이드이기 때문에 그의 해설을 참고하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주역 이해에 필요한 개념들은 별도로 모으지 않고 그때 그때 필요한 지점마다 간결하게 언급하고자 했습니다.


역易의 가치를 삶 안에 받아들이면 고정된 인식체계가 유연해져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단순한 진리에 눈을 뜸으로써 변화하는 모든 것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그 변화를 읽어 내는 섬세한 감수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변화의 한가운데서 결코 변치 않는 것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생명 원리요,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진정한 사랑이며, 대동大同의 뜨거운 이상입니다.


그 아름다움과 여러분의 담백한 만남에 이 책을 바칩니다.





1. 중천건괘重天乾卦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고, 밤 너머에서는 새벽이 기다립니다. 모든 때는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삶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1중천건.png


乾 元亨利貞

건 원형이정


-건의 이치는 원형이정이다.



건삼련乾三連(☰) 건괘가 중첩되어 있어 '거듭할 중(重)'을 썼습니다. 주역의 각 괘는 이렇게 괘사卦辭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 육효六爻(초효부터 상효)에 대한 각 효사가 이어지지요. 여기에서는 괘사 다음에 공자의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을, 각 효사에는 공자의 <소상전小象傳>을 함께 설명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1괘와 2괘인 중천건괘와 중지곤괘만 이 형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결국 주역에서 말하는 모든 이치는 천지의 뜻입니다.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아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물에 그 이치를 심어 놓은 것입니다.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의 일원인 인간은 그 이치를 알고 순응할 때 하늘의 이상을 땅이라는 구체적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바른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중천건괘와 중지곤괘의 자리가 처음과 두 번째인 이유이고, 그리하여 이 두 괘의 내용은 다른 괘들에 비해 풍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은 하늘이고 하늘은 동양철학에서 가장 형이상학적인 단어입니다. 서양철학에서 신(God)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비견될 수 있겠습니다. 우주, 도, 시간, 신의 섭리 등 다양한 개념을 아우르는 총제적인 개념입니다. 누구나 뭐라고 딱히 정의 내리지는 못하지만 "나의 진심을 하늘은 알아줄 거야", "너의 죄를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같은 문장에서 어렵지 않게 하늘이 가진 뉘앙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원형이정'은 먼저 '시간은 생장쇠멸의 과정을 영원히 순환하도록 관장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곧 하늘의 섭리 그 자체이지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현 우주의 시작은 빅뱅입니다. 하지만 빅뱅 이전에 몇 번의 빅뱅이 있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빅뱅 이전에도 빅뱅 이후에도 시간은 존재했다는 것이지요. 그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태어나 성장하고 서서히 쇠퇴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릅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벌레 같은 미물도, 인간도, 은하도, 우주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역도 화수미제괘를 마지막 64괘에 둠으로써 끝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이어져 있는 시간의 좌표도 계에서 다시 갑으로 이어져 끝없이 순환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서는 사계절로 순환의 이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곧 원형이정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 끝났는 데도 봄이 오지 않으면 하늘의 섭리가 깨진 것이겠지요. 슬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반드시 시작되고야 맙니다. 이별은 사랑의 시작을 예비합니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고 변합니다. 따라서 한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간의 작용력이니 우리가 시간의 영향 하에서 변하지 않을 도리란 없습니다. 다만 과정과 과정을 거듭하며 성숙해 가는 것, 과오를 반성하고 성찰하며 거듭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인 것입니다.


원형이정은 또한 우리가 아무리 잘났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반드시 디디며 걸어가게 마련인 단계와 같은 것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단숨에 가을을 만나 수확한다는 것은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른 나이에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여름을 건너뛴 것 같아도 기간이 짧았을 뿐 그들에게도 고된 노력의 과정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기 성취는 형亨의 과정을 빠르게 넘어 이利의 단계로 건너왔으니 곧 정貞의 단계와의 거리도 그만큼 단축된 것과 같습니다. 성공에 취해 자기 자신을 잃고 쾌락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이 없이 몰락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는 까닭입니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과정을 담담히 밟아갈 때 외부의 잣대로 측정되는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의 성취에 안분지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건乾을 도道의 개념으로 보면 <<도덕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그 자체로 존재하여 만물을 '지푸라기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길 뿐 개입하거나 편애하지 않습니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숭상하는 신 '에이와'와 같습니다. 질서를 만들고 균형과 조화를 꾀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의도성이 없는 것입니다. 도덕경 37장의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도는 언제나 무위로 행함에도 이루지 못함이 없다)'에서 말하는 무위의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의도하지 않고 그저 그러한 대로 모든 존재를 낳고 기르며 이루고 거두는 것이 하늘의 뜻이고 하늘의 뜻을 받아 실행하는 땅의 자세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의 품에서 태어나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만물과 조화하고 균형을 이루며 다음 세대로 생명의 순환이라는 가치를 넘겨 주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오직 이利만을 좇아 불균형과 부조화의 세상, 파괴와 착취의 세상을 만들어 왔기에 끝(貞)의 도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무위는 공자에게 익숙한 개념입니다. 다음은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 15장의 내용입니다.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자왈 무위이치자 기순야여 부하위재 공기정남면이이의 / 공자가 말했다. "무위로 다스린 사람이 순임금이로다. 어떻게 하셨을까? 자신을 삼가며 바르게 임금의 자리를 지키셨을 뿐이다."' 무위를 노장의 전유물로 보거나 주역을 도가道家, 유가道家와 연계하여 읽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계사전>만 해도 주역에 대한 지극히 논어적인 해설이지요. 주역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공자가 주역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Search?domain=ALL&query=%EB%8B%B4%EB%B0%B1%ED%95%9C%20%EC%A3%BC%EC%97%A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