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갖춘 윗사람을 만나 배우라.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구이 현룡재전 이견대인
-현룡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
'현룡'은 잠룡과 달리 물 밖으로 나온 용입니다. 밭은 일을 하는 곳이지요. 일터입니다. 현대적인 개념의 일터는 고정된 공간이 아닙니다. 소속된 조직의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일 그 자체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 일을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사회적 경험과 업무에 필요한 능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대인을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좋은 리더, 선배, 스승의 개념입니다.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지요. 직장 내에서 찾기 어렵다면 외부에서 구해야 합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선배를 인생의 동반자로 갖는 일은 매우 큰 힘이 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지식과 지혜가 녹아 있는 고전을 읽으면 됩니다. 특히 주역은 대인을 넘어 성인의 지혜이지요. '나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니까 아무도 필요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며 살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도 한편의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도 인문학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경험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자기만의 경험으로 세상 일을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낳기 쉽습니다.
대성괘의 2효와 5효는 각각 내괘와 외괘의 중간 자리에 있습니다. 가운데 자리를 얻었다 하여 '득중得中'했다고 합니다. 대성괘에서 1, 3, 5효는 양의 자리, 2, 4, 6은 음의 자리입니다. 양의 자리에 양효가,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을 때 이를 '득위得位'했다고 합니다. 1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6효는 각각 서로 음양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를 '응應'이라고 합니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일단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구이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니 득위하지 못했습니다. '실위失位'한 것입니다. 자리가 불안정한 것입니다. 구오와 응의 관계에 있으니 구이는 구오 대인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갈수록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득중하였으나 실위한 구이와 달리 구오는 득중, 득위하였습니다. 이 경우 '중정中正'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대인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그대로 '큰 사람'의 느낌으로 받으면 좋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늘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자기의 잘못이라면 인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큰 사람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사회적 지명도 등을 곧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인양 말하고 행세하는 이들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룡의 현見은 '나타나다'의 의미이고, 이견대인의 견見은 '보다'의 뜻입니다. 구이가 동하면 내괘는 리괘가 됩니다. <설괘전> 5장에서 '리야자명야離也者明也'라고 했습니다. 리괘는 밝은 빛과 같은 것입니다. <설괘전> 9장에서 '리위목離爲目'이라고 했습니다. 리괘는 곧 눈이니 종합적으로 '볼 견見'의 의미가 나오게 됩니다. 동시에 밝은 눈이란 변별력을 상징하니 자신을 잘 이끌어 줄 대인을 보는 안목을 갖추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의 자질이 없는 사람인데 지위가 높고 위세가 있다고 해서 이익을 위해 따르면 그가 실위하고 실세失勢하게 된 후에 끈 떨어진 뒤웅박,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되기 십상입니다. 애초에 소인을 대인으로 삼은 안목의 결여 탓입니다.
구이가 변하면 지괘는 13괘 천화동인괘가 됩니다. 연대와 동지애를 읽을 수 있는 괘이니 중천건괘 구이에서 현룡이 대인을 만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라는 문장을 '인맥'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역 텍스트에서 인맥의 확장이나 유연한 처세술을 읽는 것은 현대적인 관점도 아니요,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천지의 이치에 부합하는 삶의 자세와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맥과 처세라는 단어에는 이익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시각을 벗어던질 때 주역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얘기를 가슴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