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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21.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17>-학여불급學如不及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

자왈 학여불급 유공실지


-공자가 말했다. "배움이란 도달하지 못할 것처럼, 머뭇거리면 잃을까 두려운 것처럼."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운문처럼 해석했습니다. 마치 시를 좋아했던 공자의 감성적인 메모 한 조각을 본 듯이 말이지요.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진리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향하는 과정만이 인간에게 열려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석가모니처럼 깨달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공자는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면 득도에 뜻을 두어야 하며 그 길이 멀고 험하니 매순간 용맹 정진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한눈팔면 공부에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멈추면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십상입니다. 난무하는 독서법 가운데 하나를 익혀 시간당 한 권씩 읽는 다독을 통해 진리와 만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게 흡수하는 텍스트들이 인간의 정신을 뒤흔들어 바꿀 만큼 수준 높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제가 쓴 <<담백한 주역>>을 권하고 싶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읽어서 무엇을 얘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요. 세상에는 그런 얄팍한 재주로는 결코 읽어 낼 수 없는 깊은 텍스트들이 있고, 그것들이야말로 인간을 변화시킬 힘을 품고 있습니다.   


철학자들 역시 모든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https://youtu.be/vuswv2w81dA)에서 최진석 교수는 이런 주옥 같은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 소위 말하는 586 이념가들이 나라를 한 번 더 잡으면은 나라가 매우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목표로 해서 갔습니다. 하나는 뭐냐,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성장, 그 다음에 586 이념가들의 재집권을 막는 것,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일은 단일화밖에 없었습니다... 중략... 대한민국을 상대로 싸운 사람은 김원봉 같은 사람이죠.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분들은 백선엽이죠... 중략... (표창원: 이런 시대에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냥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는 의식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진영에 갇힙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진영에 갇힙니다. 진영에 갇히면 진영에서 만들어 놓은 논리나 이념만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요청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진영에 갇혔다 이 말은 뭐냐면은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졌다, 시민은 왕의 생각을 대행하던 백성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으로 바뀐 사람을 시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각하지 않으면은 직함은 시민이지만 역할은 백성의 역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철학자의 사유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우리는 철학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사상가 도올 김용옥 선생님께서는 <<도올주역강해>>를 출간하신 후 시중에 나와 있는 주역 해설서들을 싸잡아 폄하하시는 발언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학자로서의 도올 선생님의 업적은 위대하지만 그 위대함이 여러 사람의 주역 연구를 수준 낮은 것으로 규정할 권리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올 선생님의 주역 해설서를 읽은 독자로서 그 책은 결코 주역의 본뜻을 대표할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사유할 자유가 있습니다. 국민을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인식하는 철학자의 훈계나 타인의 연구 성과물들을 무시하는 사상가의 오만은 마치 공부를 이름난 학자들의 전유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냅니다.   


최진석 교수에게 소위 '586 이념가들'을 혐오할 권리가 있듯이 제게는 그를 싫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 분야에 대한 오랜 공부가 인간의 사유를 깊게 만드는 것은 아니요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를 보며 알게 됩니다. 도올 선생님은 오랫동안 존경해 왔고 인간적으로도 좋아합니다. 그래도 이제 남들이 쓴 주역 해설서들을 비난하는 일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학자의 풍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주역 해설서들이 미래에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선생님의 책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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